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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Jan 07. 2024

Just Walk Holland - 내 방을 구하기까지

2달간의 정착기-1

11월 9일 집을 떠나 10일 네덜란드에 도착해서 오늘이 1월 7일이니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두 달 동안의 마음이 글로 가득 찼다.


두 달 동안 소원(?)대로 걷기는 엄청 걸었다.

길을 잃어서.

더치 문맹이라 더치로 나오는 안내방송을 몰라서, 안내판 정류장을 읽지 못해서.

이사한 집에서 시내까지 버스가 없어서.

네덜란드의 11월은 바람과 비의 계절이다.

결국 K와는 같이 집 구하는 일이 틀어져 난 호스텔에서 한 달을 지내다 에이전시를 통해 방을 구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이제 한 달하고 일주일.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행운이었지만 행운은 사소한 불행도 품고 있다.

네덜란드는 4개월 이상 거주할 목적의 외국인은 입국일로부터 5일 이내 거주등록을 해야 한다. 정확히는 5일 이내 온라인으로 거주등록 신고 예약을 하는 것이고, 예약 시 (거주등록하는 Municipality 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 집 계약서 및 주소를 갖고 있는지

2. 아직 집을 찾지 못했을 경우

   2-1) 회사 주소로 임시 등록 (최대 3개월까지 가능)

   2-2) 동료나 친구 집으로 임시 등록

위 상황 중 선택하여 예약을 진행하고, 예약은 빠르면 2주, 길게는 2달이 걸리기도 한다.


거주등록이 빨리 되어야 하는 이유는 거주등록을 해야 우리나라 주민번호와 같은 BSN 번호를 부여받아 통장 개설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통장을 개설해야 휴대폰, 네덜란드 건강보험도 들 수가 있다. 거주등록을 안 하는 것은 네덜란드 시스템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반드시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고 (세금을 걷어야 하므로) 하지 않을 경우 벌금도 부과된다.


난 거주등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K와 3개월 전부터 이야기했지만, K는 내가 네덜란드 가기 전 일주일 전 같이 집을 구할 수 없다 한 것뿐만 아니라, 내가 도착한 이틀 날 새벽 휴가를 가버렸다.


5일 이내라는 거주등록 시한 하루를 앞두고 마음이 급한 난 대안책으로 2-2번을 설명하려 전화를 했다가 '내가 일에 시달리다 오랜만에 휴가를 왔는데 이런 연락을 하냐'는 둥, '본인한테 피해가 올지도 모르는 이런 걸 부탁하냐'는 둥 도저히 내가 알던 K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황당한 대답을 했다. 일단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K는 2년 전에 이곳에 왔으니 거주등록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1월 네덜란드에 갔을 때 내가 오게 되면 같이 집을 구하자 한 것도 K였다. 8월 같이 집을 구하자 하니 'You're the only person I want to stay together!' 이래 놓고 3개월이 지나고 일주일 전에서야 '내가 얼마 전 계약서 다시 보니 내년 7월까지는 이사 못 가'라고 하는 K를 두고 이런 상황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생각도 안 났다.


그냥 내가 K를 너무 믿은 바보인 거다. 평소 "I only trust you. You are my sister, real sister in my family"라고 하던 K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님 family에 대한 기준이 나와 매우 다른가보다. 


바로 그날 난 호스텔을 예약하고 다음날 새벽 가방을 싸서 나왔다. 차라리 애초에 공항에서부터 호스텔로 가는 것이 편했을 텐데 집을 같이 구하기로 해서 출퇴근 길이 두 시간 이상 걸리는 다른 도시의 그곳에 있었던 것이지, 전화 한 통으로 내가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출근 시간 걸을 때 일출시간 무렵

임시로 회사로 거주등록을 해놓고 호스텔에서 출퇴근을 하기로 하니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다. 그리고 호스텔 생활은 의외로 산티아고에 다녀온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알베르게 생활과 큰 차이가 없었다. 산티아고 때와 차이라고는 일을 하러 길을 떠났다가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는 점. 그 밖의 생활은 단순하고 간단했다. 그리고 때때로 사무실에서 호스텔까지 10km를 걸으며 네덜란드에서 걷고 있다는 행복함과 지낼 곳이 있다는 감사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호스텔의 주말 아침 요가 시간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처럼 동네 편의점만큼 부동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walkin 하는 부동산이 별로 없고 대부분 온라인으로 viewing을 신청해야 집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네덜란드는 몰려드는 이민자 수요 대비 주택수가 한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housing crisis라는 상황에 걸맞게 집도 아닌 '방'을 보러 다니는 것조차 기회가 별로 없었다. Viewing 만 30개 넘게 신청했지만 연락이 온 곳은 3군데뿐이었다.


2주 정도 호스텔 생활을 하고 있을 때 viewing 오퍼를 넣어놓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여자 세입자를 찾는다 하여 viewing 오퍼를 넣었던 곳이다. 사무실까지 출퇴근이 1시간 정도 걸리는 시골 마을이지만 아침저녁으로 걷는 게 일상인 나에게 시골은 더 좋았다.


집을 보러 갔을 때 에이전시에서 나온 사람은 나에게 "이 집에 another Korean gir이 있으니 같이 잘 지낼 수 있을 거다"라고 환심 사는 말을 했는데 난 누가 살든 거주등록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어 허름한 이 방에 이사 가겠다고 당일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2주 뒤 계약서를 작성하고 12월 이사를 했다.

공항이 가까워 종이 비행기처럼 보인다.

이사한 첫날 Viewing때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였다. 이전 세입자가 마치 1년 넘게 청소한 적이 없는 것처럼 방엔 먼지와 냄새가 가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창문 손잡이가 끝까지 닫히지 않아 창문 틈으로 소음과 찬바람이 새어 들어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매트리스가 무려 2017년 것이라는 점. 매트리는 스펀지처럼 푹 꺼져 허리와 엉덩이가 매일 아침마다 아팠고 공항과 매우 가까워 비행기 이착륙 소리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지만 아마 당시 K한테 받은 충격과 배신감으로 집을 구할 수만 있다면 다른 문제쯤은 상쇄된 것이리라.

네덜란드에는 창문을 안 닫히게끔 만드나?싶었던 내 방의 창문 손잡이. 언제 고쳐줄까?

그리고 에이전시가 말한 다른 한국인 걸은 없었다. 같이 한국음식 만들어 먹고 할 수 있을 거란 조금의 기대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더군다나 여자는 나 혼자였고 나머지 남자 4명의 세입자들이 있다. 더치 1명(58세), 루마니아 2명(57세, 49세), 벨지안 1명(28세). 애초에 왜 집주인이 여자 세입자를 찾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저씨들의 배려로 샤워실은 혼자 쓸 수 있어 감사했다.


두 달 전 일을 글로 쓰다 보니 내가 많이 외로웠나 보다 싶었다.


혼자도 씩씩한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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