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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Jan 26. 2021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

오늘 회사에서 2021년도 연봉이 결정됐다. 이미 사내 공지에서 대다수가 동결이거나 삭감이며, 올라봤자 2% 정도일 것이다, 라는 뉘앙스를 풍겼어서 블라인드를 비롯해 많은 동료들이 웅성거렸다. 워낙 체계가 없고 중구난방에 각종 비리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나의 무능력한 상사의 연봉이 6%나 올랐다는 건 적잖은 충격이었다.


소름 끼치는 것은 단체방에 연봉 올라온 것 봤냐고, 일할 맛 안 난다며 혼자 난리부르스를 췄는데 연봉 인상된 사람 중에서도 상위 1%에 속할 만큼 수혜자였던 것이다. 그의 가식적이고 여우 같은 면에 소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남들보다 열심히 했거나 잘했거나 팀원을 위해 큰 도움을 준 것이 있다면 그래도 파트장이니까, 1년간 부족해도 고생했으니까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실적은 1년 차 팀원보다 못할 정도로 바닥을 기었고 정치질도 잘 못했으며 어딘가 딱 괴롭히기 좋은 만만한 스타일에 여기저기 똥 싸지르기 일수여서 사원들이 헤매고 똥 치워주기 바빴다. 본인 일도 잘 못했지만 남에게 피해까지 주는, 좋은 점을 찾기 힘든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구석에서 노예 짓이라도 잘 한 건지 고과 평가도 좋았으며 연봉 인상까지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기력함의 끝으로 빠뜨렸다. 회사를 다니며 이런저런 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으나 철저히 정량적 평가만을 한다는 우리 회사의 모토와는 정반대 되는 결과였다. 곰 인척 하는 뱀 새끼였던 것이다.


"세상은 나 빼고 다 야무지게 잘 사는구나.

가장 멍청한 것은 또 나였구나."


이런 절망감은 마치 나보다 편안하게 인생을 산 친구가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그 지인은 어렸을 때부터 취집 노래를 부르며 여자의 삶은 남편 잘 만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커리어에 욕심 많았던 나는 꿈을 좇았던 열정맨이었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20살 때부터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고 그녀는 부를 갖춘 남자를 얻었다. 그녀의 한심한 신념-철저히 내 기준에서-은 하늘의 박수를 받아 뜻을 이뤘고 나의 꿈은 발톱의 때만큼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취집을 바란 여자들은 멍청하고 골 빈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빨리 깨달은 똑똑이들이었구나. 진짜 바보는 나였구나.


곧이어 지인을 넘어 알지도 못하는 제삼자와도 비교하고 괴로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복잡 다난하고 무기력할 때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영화를 보면서 힐링하는 편인데 그러다 찾은 것이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였다. 비영리 단체에서 기부금 관련 업무를 하는 브래드는 문득 그의 부하직원이 이렇게 돈 안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선언하고 그만둔 뒤 생각에 잠긴다. 그의 대학교 동창들은 TV에 나오는 유명 정치인이자, 작가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IT기업을 팔아 은퇴하고 경제적 자유의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47세라는 이미 희망이 없는 나이에 평범한 집에서 아직도 한 푼 한 푼 아껴가며 살고 있다. 현재에 늘 만족하는 아내는 이런 브래드의 마음을 알아줄 리 없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 뭔가 내가 모를 해답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었다. 영화의 첫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그냥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과 너무 똑같고 솔직해서 깜짝깜짝 놀라며 시청했을 뿐이다.


"내가 현실주의자인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적당히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았을까? 그래도 내 아들은 잘 키웠어. 하버드라니! 하버드에 간 나의 아들을 상상해봤다." - 영화 속 브래드의 대사 중.


끔찍하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해 자식에게 바라는 점을 투영하는 부모가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자식의 성공만을 바라보는 한심한 부모가 된다면? 영화의 마지막에 브래드의 아들이, "근데 다들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빠 생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아빠는 내 의견에만 신경 쓰면 돼."라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이런 생각쯤이야 나도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



남들과 비교하고 나를 깎아내리는 시간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 그 시간에 내 역량을 키우는 일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쯤은 나도 백번 천 번이고 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봐도 이 세상이 나를 비웃고 그런 너의 노력은 하찮다는 듯 나를 짓 이기고 다른 사람에게만 기회를 주는 걸 보고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옛날에는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하고 더 부지런해졌지만 그럴수록 어딜 기어오르냐는 듯 세상은 더 큰 벽을 주곤 했다.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도 분명 괴로울 거야, 고통이 있을 거야, 라며 위안 삼아보기도 했으나 곧이어 그런 말도 안 되는 합리화가 더 나를 비참하게 했다. 결국 영화를 보며 공감하긴 했으나 내 삶에 실질적 변화를 주진 못했다. 이 깊은 감정의 골은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혹시 방법을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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