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있어요(?) 영화 보시고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처음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따뜻하면서도 화려한 영상미와 그에 걸맞은 OST에 압도된다.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고갱, 드가 등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을 보며 '이 영화는 예술을 말하고자 하는가?'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메시지를 위한 장치였다. 물론 영화를 다 본 뒤 파리의 명소나 문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삶을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여운이자 재미가 되겠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길
사람은 누구나 '낭만'을 꿈꾼다. 지금의 여자친구가 아닌 다른 저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면 어떨까? 내가 멋진 소설을 만들어서 유명한 작가가 되면 이렇게 멋있는 파리에서 돈도 벌고 자유롭게 살고 보다 낭만적으로 인생을 꾸리지 않을까? 밤에도 낮에도 멋있는 파리라니! 여기에 살면 내가 살던 곳보다 훨씬 더 하루하루가 좋지 않을까?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은 비단 주인공 '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번쯤, 혹은 매일같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영화의 장소, 주인공, 배경, 음악 이 모든 것은 '낭만'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화시켜주었다. 그 화려함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길, 이윽고 현실을 직시한 길, 그 안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가치관이 맞는 새로운 여자를 맞이하는 길을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로 대입해보자면, 내가 저런 멋있는 사람을 만나면 꿈꾸는 데이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보다 돈을 많이 벌어 강남 한복판의 건물주가 된다면 매달 좋은 옷과 밥을 먹으며 풍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산다면 지금보다 덜 비교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은 어떨까. 이상형인 사람을 만나도 견딜 수 없는 단점은 존재한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짊어질 책임도 늘어나 예전의 스트레스와 비교할 수 없다. 미국 교환학생 갔을 때 미친 자본주의에 찌들어 매일같이 지친 얼굴이 역력했던 친구들을 떠올려보자. 환상은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현재에 만족하기란 때로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문득 나만의 낭만이 마음속에서 올라오더라도 그게 일상이 되었을 때 닥칠 또 다른 문제를 간과하지 말 것. 물론 현재에 만족하며 산다고 해서 길이 맞지도 않는 이네즈와 결혼까지 이어나갔다면, 즉 현실에 닥친 문제를 회피하고 해결하지 않았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현재에 만족하라는 것이 아닌 상황의 본질을 잘 보라는 메시지를 함께 더해, 영화의 모든 요소에 녹아내리면서도 연출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p.s. 결혼할 사람은 사소한 것들이 잘 맞거나 이성적으로 끌리는 무언가에 믿고 하기보다는 애인과 그 가족들의 전체적인 사상이나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