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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Feb 20. 2023

30대부터 벌어지는 격차, 미세한 틈

20대 때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30대 때는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40, 50대가 되면 격차를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된다. 그때는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차이를 체감하게 된다.


엄마가 한 말이다. 30대 초반인 나는 최근에 미세한 균열을 봤다. 카톡 친구가 1600명이 넘을 만큼 많은 사람을 사귀었다. 모임도 많이 나갔다. 미묘하지만 오래된 친구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미미해서 큰 차이는 없지만 40세가 되는 순간 나비효과처럼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의 20대는 평범함 그 자체였다. 내 어릴 적 친구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난 만족하지 못했고 앞서가길 원했다. 회사가 맘에 들지 않아 이직을 시도했고 학벌이 맘에 들지 않아 석사를 준비했다. 부자가 되고 싶어 주식 공부도 하고 부업도 했다. 체력 관리를 위해 약 10년 간 규칙적으로 운동했고 20대의 마지막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회사에서 여우 같고 영악한 애들 몇 명을 요리조리 피해 처세에 관한 내공도 생겼다.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바위에 계란 치듯 딱딱한 그 돌을 깨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20대 후반이 될 쯤엔 지쳤다. 이렇게 해서 결국 난 뭐를 이뤘지? 뭐가 달라졌지? 현타가 왔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딱딱한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다 내려놓고 싶었다. 결혼으로 한 방에 역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 노력이 비웃음 당하는 것 같았다. 우직하게 정도를 걸어온 이 길의 끝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걷는 것 같았다. 퇴사하고 싶었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격하게 쉬고 싶다거나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건 천성이 게을러서 일수도 있지만 너무 많은 노력으로 번아웃이 와서 말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때 퇴사 콘텐츠를 다 뒤져볼 정도로, 대리석 바닥에 뛰어내려 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시기도 있었다.ㅡ많은 퇴사 콘텐츠에서 자살 생각이 든다면 그만두라고 했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고 버텼다.ㅡ 남들보다 일찍 취업해서 놀고 싶었다. 친구들이 축제 때 남은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혹여나 취준 하는 친구들이 기분 나쁠까 봐 어떠한 고충도 내색하지 않았다. 운동은 아무리 해도 타고나게 몸매가 좋은 애들 발끝도 쫓아가지 못했다. 나중엔 희망도 생기지 않았다. 절망도 희망도 없이 ‘무’의 상태가 되었지만, 만들어진 습관은 쉽사리 바뀌질 않아서 주어진 일을 당연하듯 쳐냈다. 버텼다는 표현도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바위에 금이 갔다. 겉보기엔 크게 다를 건 없다. 나는 균열을 느꼈다. 40세에 이르렀을 때 어쩌면 크게 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틈을 봤다. 국내 최상의 학교에 입학했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글로벌 기업에 동종 업계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연봉으로 협상해 들어갔다. 부업의 성과 덕에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나만의 힘으로 돈 벌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ㅡ정말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최소 1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을 남길 자신은 있다.ㅡ 물론 이 세계에서 나는 용의 꼬리다. 그렇지만 싫지 않다. 나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 명씩 밟아가는 짜릿한 선의의 경쟁(?)이라니. 2030대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평생이 좌우된다는 말이 어떤 건지 약간은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힘내볼 가치는 있다.


친구들은 치열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Respect 하긴 했으나 굳이 따라 하지 않았다. 소득 수준도 생각하는 방식도 꿈꾸는 미래도 전부 달라졌다. 말하는 게 다르니 나는 친구들 앞에서 포부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나의 계획에 브레이크를 걸기도 했다. 


'굳이 그거 해서 뭐 하게?'


처음엔 격차를 느끼는 내가 나쁘다고 생각했다. 나도 별 거 없으면서 사람에 따라 급을 나누다니 건방지고 오만하다고 느꼈다. 누가 이런 내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다면 비난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너무 소중해진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24시간이 모자라다. 돈보다 귀중한 시간에 아무 하고나 아무런 걸 하며 보낼 수 없다. 안타깝지만 발전이 없는 오래된 친구들은 뜨문뜨문 보게 된다. 한 달에 받는 소득 수준이 차이 나기 시작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이 달라진다. 주변에 수준 높은 사람들이 많으니 바라보는 관점과 미래의 꿈이 달라졌다. 


언제 집값이 떨어지는지 신세한탄 하는 친구들과 어떻게 집을 살 수 있는지 고민하는 나는 같은 선상을 달리기엔 어려웠다. 매번 퇴근 후 술 한 잔 하고 마무리로 노래방에서 달리며 회사에 은근히 만족하면서도 매일 뒷담만 하는 전 직장 동료들과 자주 만나기엔 기가 빨린다. 한두 번이야 그럴 수 있지만 현 상황이 불만족스럽다면 다음 스텝을 위해 되든 안되든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다 큰 성인이고 조언하는 것도 우스워 가끔씩만 보게 된다. 쌓아온 정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란 걸 알면서도 나의 발전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자주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을 경험해서인지 피해 준 건 없지만 미리부터 경계하게 된다. 나랑 별 차이 없는 줄 알았던 친구의 환경과 생각이 달라지면 그걸 질투심 없이 받아들이는 건 현자가 아니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늘 무리의 대장처럼, 뱀의 머리처럼 살아서 때론 자신감을 넘어선 오만함으로 찼던 내가 드디어 용의 꼬리로 입성했다. 절로 머리를 숙이며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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