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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Mar 22. 2022

사랑하는 캠핑장이 사라지는 일

사라진 장소를 이야기하는 데 ‘팔현캠프’가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오래전 강릉에서 폭설을 만난 적이 있다. 모래사장을 다 덮을 만큼 눈이 많이 쌓여서 바다와 바다가 아닌 곳의경계가 흐릿했다. 그해 겨울 나는 혼자였고 “우와 저 풍경 좀 봐. 예쁘다.”라고 말하는 대신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렀다. 그 기억 덕분에 한동안 강릉에 애틋한 마음을 품고, “강릉의 사천해변이 참 좋더라. 꼭 가봐라.”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보면 누나네 동네인 줄 알겠네. 왜 남의 동네에 그렇게 정을 줘. 어차피 다 변할 텐데.”


걔 말처럼 정말로 내 것이 아닌 장소는 변하거나 사라진다. 최근 몇 년 새 사랑하게 된 장소는 당연하게도 캠핑장이거나 캠핑을 했던 곳들인데. 이미 많은 곳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영원할 것 같은 장소를 잃어버리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했을 때보다 훨씬 더 사랑하게 된다. 


사라진 장소를 이야기하는 데 ‘팔현캠프’가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팔현캠프는 남양주 천마산에 있는 잣나무 숲으로 캠핑 좀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곳이었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서울에서 편도 1시간 거리다), 그 어떤 오지 캠핑장보다 야생적인 환경으로 유명했다. 일단 들어가는 입구부터 특별했는데, 캠핑장 입구와 잣 나무 숲(사이트) 사이에 작은 개울이 있어서 인디 아나 존스처럼 물길을 가르며 들어가야 됐다. 개울이라지만 차로 지나가기엔 물이 꽤 깊어서 차가 빠져버리진 않을까 늘 걱정되었다. 흠, 용감한 자만이 입장할 수 있는 캠핑장이란 의미인가? 실제로 거길 통과의례처럼 지나고 나면 도시 깍쟁이스러운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그래서 일부러 보수 공사를 하지 않으셨는지도 모른다. 도시 깍쟁이 놈들을 진정한 캠퍼로 만들기 위해서.

아직 끝이 아니다. 두 번째 관문이 남아 있다. 팔현의 사이트는 평지 구역과 산 구역으로 나뉘는데, 산 구역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야트막한 언덕 정도가 아니라 제법 가파른 산이라서 산 구역에 진입하려면 거의 곡예 수준으로 차를 몰아야 했다. 그래서 팔현을 거친 차들은 ‘캠핑한 티’가 났다. 어딘가 긁혔거나 흙투성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팔현은 다른 캠핑장에 비해 유독 느슨한 운영 방식을 유지했다. 보통 캠핑장이 질서 유지를 위해 주차장처럼 구획을 나눠두고 한 사이트에 한 팀씩 배정하는 시스템이라면, 팔현은 마음에 드는 땅을 쓰고 싶은 만큼 쓰도록 내버려뒀다. 매너타임(게스트하우스의 소등 시간과 비슷한 개념) 이후의 활동에 대한 제지도 따로 없고, 두 팀 이상이 모여 함께 노는 떼캠(떼지어 하는 캠핑의 줄임말. 대부분의 캠핑장은 떼캠을 금지하고 있다)도 가능했다. 

팔현의 나이브함에 반한 전국 각지의 자유 영혼들이 주말마다 잣나무 숲으로 모였다. 그들은 페스티벌에 온 것처럼 밤새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웃고 떠들었다. 나는 떼캠을 즐기지 않고 캠핑장의 고요함을 사랑하지만, 팔현의 무질서만큼은 미워할 수 없었다. 뭐랄까. 흥이 많은 부족의 마을에 초대받은 느낌이라 사뭇 유쾌하기까지 했다. 

자유 영혼들은 의외로 부지런하다. 다음 날 해가뜨면 퇴장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팀들이 짐을 싸고 캠핑장을 떠난다. 어느새 주변은 조용해지고 페스티벌 현장이었던 숲은 요정(혹 은 도깨비)이 나올 것 같이 신비로운 분위기로 변한다. 우리는 그 반전 매력을 사랑했다. 하루치 이용료를 추가로 지불하고 텅 빈 잣나무 숲에 남아 일요일 오후를 보내곤 했다. 


몇 년 전 안식월을 맞아 전국 캠핑 일주를 다녀온 김수현은 말했다. 

“전국을 다 돌아봤는데 팔현 만한 캠핑장이 없더라.”

“파랑새는 우리 집에 있었어. 뭐 이런 거야?”

사실 김수현은 캠핑 일주를 떠나기 전 굳이 집 근처에 있는 팔현에 들러 며칠을 머물렀었다. 평일에 숲을 혼자 쓰는 만족감. 나무에 해먹을 걸고 낮잠 잤을 때의 충만함. 숲에 사는 고양이와 나눈 짧은 우정까지. 팔현에서 보낸 모든 순간이 너무너무 좋아서 그대로 눌러앉고 싶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경상도, 전라도에 있는 캠핑장들을 가보겠나 싶어서 아쉬움을 남기고 떠났는데. 아무리 좋다고 소문난 캠핑장에 가도 팔현 생각만 나서 스스로도 웃겼다고 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뭐. 가깝다고 평가절하하지 말고 자주 가서 놀자.” 

“곧 겨울이라 영업 안 할걸? 봄에 많이 가자.” 


그리고 얼마 뒤, 2019년 12월 11일 팔현캠프 인스타그램에 공지가 올라왔다.


공지사항 12월 1일부로 팔현캠프 폐지합니다. 

We will be closed until further notice.


폐지라는 단어가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왜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이 없지? 매년 ‘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같은 말이 있었는데. 그리고 불안은 현실이  됐다. 봄이 되어도 여름이 되어도 팔현캠프 돌아오지 않았다. 팔현이 문을 닫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몇몇 캠퍼들은 직접 나서서 폐업의 이유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모두가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영업을 쉬는 것이다. 야영장 안전 기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땅 

소유권 관련해서 갈등이 있다고 들었다. 기타 등등. 어쨌거나 팔현이 사라졌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웃기고 슬픈 건, 나를 포함한 팔현을 사랑했던 모두가 언젠가 팔현이 거짓말처럼 돌아올 거라고 아직도 믿고 있다는 것이다. ‘#팔현캠프’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올라오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댓글을 단다. 


_ 팔현 문 열었어요?

_ 아니요. 몇 년 전 사진이에요. 저도 너무너무 그립네요.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 이런 대사가 있다.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영원히’란 지속되고 있는 것에는 붙일 수 없다는 것. ‘영원히 사랑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워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항상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늘 영원하지 않은 것 때문에 산다. 예를 들면 꿈, 추억, 미련 이런 것들로. 혹은 사랑, 사람 그런 것들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캠핑장이 사라질까. 내 것이 아닌 장소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사랑하는 장소를 늘려가겠지. 사람은 영원하지 않은 것 때문에 사니까.  


P.S.

이 글을 쓰고 난 후 얼마 뒤에, 팔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산 구역 캠핑은 금지되었고, 평지 구역에서만 캠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예전의 팔현이 아니라고 아쉬워하는 포스팅이 여러 개 올라와 있다. 누군가는 헤어진 애인과 재회한 기분이라고 했다. 우리가 그리워했던 건 팔현이 아니라 그 시절의 우리였다 뭐 이런 건가. 조금 아쉬워도 괜찮으니 이번엔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온 팔현에 가볼 생각이다. 


출처 팔현캠프 공식 인스타그램



*작년 12월 발간된 에세이 <주말의 캠핑>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랑하는 장소들이 사라지기 전에 사랑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시기를!  봄 잘 챙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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