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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Mar 26. 2022

과거는 왜 미화될까

영원하지 않아서 다행인 일들



과거는 왜 미화될까. 웅재 선배가 보내준 원남동 시절 영상을 보고 “아, 그때 참 좋았지” 해버렸다. 잘 생각해보면 밤도 자주 샜고 미래는 불투명했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없었던 시기라 지금보다 딱히 나았던 것 같진 않은데. 생일마다 케이크에 초를 꼽고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꺄르륵 웃던 사무실의 분위기가 그리워졌다.


화요일엔 현상소에 가서 겨울 필름 사진을 맡겼다. 인화된 사진 속에 눈이 가득했다. ‘참 예쁜 계절이었네.’ 생각했다. 겨울이 너무 춥고 길다고. 앓는 소리를 했던 게 고작 몇 주 전인데. 과거는 왜 미화될까.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아서 다행인 이유. 괴로움도 영원하지 않음.” 커뮤니티에 올라온 <스물다섯 스물하나> 리뷰를 보다가 좋아서 일기에 적어 두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반짝이는 순간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고통도 조금씩 옅어지는 거네.


나는 보통 생업,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 괴로움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매일 새로운 괴로움이 생기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곧 사라질 일 때문에 내내 불행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과거는 왜 미화 될까. 사실 그건 내가 과거를 미화하기 때문이다. 3년 일기장엔 (대체로) 좋은 이야기만 쓴다. 필름 카메라엔 행복한 순간만 담는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세상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이 기록이니까. 남기고 싶은 이야기만, 원하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기억할 자유를 누린다. 사라졌으면 하는 일들은 굳이 붙잡지 않는다. 어차피 영원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니. 빠른 시일 내에 영영 꺼져버리렴. 아, 내 인생의 편집권이 나에게 있어서 새삼 다행이다. 앞으로도 쭉 맘대로 기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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