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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지에 사는 허거북 Jun 19. 2024

1. 내 인생의 첫 부서는

PART 1. 나의 첫 부서에서부터 첫 퇴사까지

 
 첫 번째는 다른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이었다.
 이 부서를 발령받은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커다란 강당에서 부서명과 함께 말씀하며 사원증을 나눠주시는데,
 
 “허거북, 신생아중환자실.”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사원증을 받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부서명을 보았고,

정말 신생아중환자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헛웃음과 함께 대학 동기들에게 ‘나 니큐임(NICU 신생아중환자실)….’ 카톡을 하였으며,
 ‘ㅋㅋㅋㅋㅋㅋㅋ’이 도배되었다.
 
 나에게 떠오르는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의 이미지란,
 새하얀 얼굴에 천사 미소가 잔잔히 남아계시는 청초한 이미지? 그런 이미지였다.
 
 근데 나는 석탄 그 자체.
 방금 연탄 들고 왔다고 해도 믿을 얼굴이다.
 
 그런 내가 그런 뽀송뽀송한 신생아를 들고 달래고 있는 모습?
 상상이 안 된다. 친구들 역시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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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원증을 받고 나서는 바로 부서로 가는 것이 아니라,
 4일 정도 교육간호부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EMR 어떻게 사용하는지, 전반적인 병원 시스템, lab 할 때 쓰는 lab 통 종류, 수혈 종류 등등
 여러 가지를 배운다,
 
 교육을 들으면서 ‘지금 이걸 들어서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심하게 들었다.
 너무 방대한 내용의 교육이고, 내가 이것들을 못할 거 같기 때문이었다.
 (사실 가장 집중 있게 들은 건 복지 파트 ^^)
 
 그렇지만 놀랍게도, 정말 도움이 되었고 두 번째 병원에서 일하는 데에 도움이 되긴 했다.
 
 4일간 교육은 아마도… 교육 간호사 선생님들과 다른 병동 수간호사 선생님들이 했었던 거 같다.
 그래서 교육 간호사 선생님들의 신규간호사 썰도 듣고,

 각각 부서의 분위기 또한 재미 삼아서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중, 퇴사하기 직전까지도 가슴에 새긴 이야기가 있다.
 부서 선생님 욕, 병원 욕하려면 병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해라.이다.
 
 이 이야기를 해준 선생님은 병원 근처에서 술을 마시며 선배 간호사 선생님 욕을 했다가,
 술집 내에 같은 병원 선생님이 있었는지 듯, 그 욕이 그 선배 간호사 선생님 귀로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 일 년간 힘들었다고 했다.
 (이 선생님뿐만 아니라 내 근처에도 이런 사례가 몇 명 있긴 했다. 조심하자.

 와 근데 저 선생님은 1년을 어떻게 버티신 거지…)
 
 그리고 제일 흥미롭게 들은 건 각자의 부서 분위기였다.
 oo 중환자실은 김정은이 산다. 세미 북한이다.
 oo 병동은 피 파티다. 등등이었다.
 
 나 역시 소심하게,
 “... 선생님… 신생아중환자실은… 어떤가요..?”라고 여쭤보았고,
 나의 신생아중환자실 부서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올드 선생님 기준으로 분위기가 낫베드였다.
 
 그렇게 교육을 듣다가 중간에 부서 탐방을 하게 된다.
 
 각 부서의 수선생님들은 신규 간호사들이 교육받는 장소로 오셔서 데리고 내려가신다.
 그리고 부서 한 바퀴를 돌면서 부서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하신다. 병동 구조 설명, 보통 어떤 신생아들이 오는지 등등..
 
 그때 한 바퀴를 돌면서
 내 팔뚝보다 훨씬 작은 아기들이 눈에 보였고, 정말 잘못 건들면 부스러질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유하고 있는 아기, 울고 있는 아기, 그 와중에 순하게 자는 아기…
 거칠다 못해 사포 같은 허거북. 연약한 아기들을 간호할 자신이 더욱더 사라지고 있었다.
 
 달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은 아기들은
 간호사 선생님이 따로 안아서 달래며 일하고 있었다.
 
 포대기에 싸져 있는 아기는 안정감 있게 안겨져 있고,
 서서히 울음을 그치고 있었다.
 
 저 아기의 안정감과 편안함이 나에게까지 느껴지며,
 미천한 신규는 아기에게 미리 사과를 하며 부서 한 바퀴를 돌았다.
 
 
 전반적인 설명이 끝난 뒤
 수선생님 방으로 들어가, 면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가가 어떻게 되세요?-
 -지금 어디서 사세요?-
 -선생님은 신생아중환자실 오고 싶으셨어요?- 등등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며 좋았고 수선생님도 좋으신 분이었다.
 나 역시 이전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이 실없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하지만 웃음은 거기까지였다.


 “선생님은 신규 시절을 어떻게 보내실 거예요?”
 “버텨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들더라도 버텨야 하죠..”
 “선생님. 버티면 안 돼요.”
 
 물음표 백만 개였다.
 힘들면 당장 그만둬야죠! 그 의미인가? 선생님의 대답이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신규 시절은 죽을 만큼 힘드니까 버티는 게 답이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흐를 때까지 버텨라.
 이런 식으로 수없이 들은 말이라서 척추반사처럼 바로 나온 대답이었다.


 역시 관리자계급이라서 꼰대... 아니다
 
 “버티는 건 그냥 일들이 들이닥쳤을 때 으… 하고 부들부들하면서 있는 거 같아요. 버틴다고 생각하지 말고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하세요.”
 
 너무나도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수선생님.
 허거북. 과연 버틸.. 아니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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