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가을을 좋아하세요?
파리지앵이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가는 곳
물결치는 노란빛,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가로수를 보는 일과 파도처럼 겹겹이 쌓인 낙엽 위를 걷는 걸 좋아한다. 플라타너스, 벚나무, 미루나무, 버드나무. 나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걷기만 해도 좋은 계절. 파리의 가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몇 곳을 소개한다.
가을의 색과 냄새가 가득한, 튈르히 정원
튈르히 정원은 1구에 위치한 루브르 박물관과 튈르히 궁전 사이에 있는 정원이다. 1564년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 의해 튈르히 궁전의 정원으로서 만들어졌으나, 프랑스 혁명 이후 대중을 위한 공원으로 개원되었다. 수많은 파리의 공원 가운데 가장 파리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장소이다.
이곳은 휴일이나 점심시간 무렵이 되면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19세기에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1862년, 튈르히 공원을 그린 마네의 그림에는 음악을 들으러 왔거나 수다를 떨기 위해 여기 온 파리 멋쟁이들의 오후가 묘사되어 있다. 인상파는 물론 철학가,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마네는 파리에서 수많은 예술가와 친교를 맺었다. 그래서인지 그림 안에는 시인 보들레르, 유진 형제, 화가 베스트 모리조 등 수많은 유명인사가 그려져 있다.
Édouard Manet, <Music in the Tuileries>, 1862년
튈르히에서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크게 두 곳인데, 공원 정문에서 안쪽으로 걸어오다 보면 보이는 가로수 길과 분수대를 지나쳐 루브르로 향하는 길목에서 우측에 있는 공간이다.
11월에는 꼭 이곳을 걸어요, 뤽상부르 공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바로 뤽상부르 공원이다. 중앙에 있는 분수대를 벗어나 작은 길로 접어들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가로수 길이 나타난다.
루이 13세의 섭정 모후(母后) 마리 드 메디시스를 위해 17세기에 만들어진 뤽상부르 공원은 파리지앵의 삶이 깃든 공간이자 여러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곳이기도 했다. 앙리 루소, 빈센트 반 고흐, 알베르트 에델펠트 등의 화가가 이곳의 풍경을 그렸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파리지앵이 찾는 도심 속 휴식처일 뿐만 아니라 야외 전시, 오페라와 콘서트가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뤽상부르 공원을 그린 그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 작품이다.
Albert Edelfelt, <The Luxembourg Gardens>, 1887년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바게트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며 가을을 만끽하는 사람들. 이런 풍경을 바라볼 때면, 그들의 삶의 조각이 차곡차곡 쌓여 내 속에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나에게 가을의 색이 무엇이냐 물으면, 아마도 한참 망설일 듯하다. 붉은색, 노란색, 빛바랜 갈색. 가을의 색은 모두 아름다워서 어느 한 가지만 선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Vincent Van Gogh, <Lane at the Jardin du Luxembourg>, 1886년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센강의 산책로
여름의 센강이 청춘을 닮은 푸른빛이라면, 가을의 센강은 30대 여인의 우아한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빛이다. 센강의 길 중 가장 좋아하는 길을 꼽으라면 역시 노트르담 주변의 강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며 오후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만해진다.
특히 해질 녘 다리 바로 건너편의 카페에 앉아 노을을 보는 것은 파리지앵만의 특권. 주말 오후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다리 위에서 재즈곡을 연주하곤 한다. 삶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하고 중얼거리게 되는 순간이다.
센강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는 파리지앵을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파리 근교의 그랑 자트섬(Ile de la Grande Jatte)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파리지앵을 그린 쇠라의 작품이다. 200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파리지앵의 휴식처인 센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그림이다.
Georges Seurat,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188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