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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Feb 04. 2021

다섯 살에게 내일은 빨리 와야 하는 것



유아가 늦게 자는 이유는 '잠드는 일'이 '죽는 일'과 유사하게 느껴져서라고 한다. 그 말은 우리 딸에게도 적용될까? 해님이는 그저 더 놀고 싶어서 못 자는 것 같은데. 하루 종일 놀아도 부족하다며 울면서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애니까.



그래도 매일 밤 아이가 온몸으로 표현하는 상실감을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에게 놀지 않게 되는 상태는 어떤 의미에선 '죽음'과도 같을 테니 말이다.






어제는 <옥토넛>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2시간에 못 미치는 분량. 영상 시청 시간이 조금 긴 것 같았지만, 육아에 진력이 난 날에는 이런 자구책도 필요했다. 볼 땐 좋았는데 다음날이 문제였다.



어제의 <옥토넛>을 또 보지 않으면 자지 않겠다는 고집이 시작된 것이다. 저녁 8시였다. 단칼에 안된다고 하니 괴성을 지르다 식탁 밑으로 들어간 아이. 하지만 나도 굽힐 수 없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크레딧까지 봐야 만족한다는 것, 10분만 보여주고 꺼버렸다간 더 큰 화를 입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식탁보 공주> 이경혜 글 정성화 그림



"난 슬퍼. 옥토넛 봐야 하는데 엄마가 보지 말래. 어떻게 하지? 흑흑흑"



한참 씩씩거리던 기세가 한풀 꺾인 아이는 이제 훌쩍이기 시작했다. 연극 무대에서나 들을 법한 처량한 대사였다. 늘 있는 일이라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난 이 상황을 빨리 타개하고, 아이를 쉽게 재우는 마법 같은 말을 고르고 있었다.



"오늘 많이 봤어."라고 말해봐야 소용없었다. '많이'의 기준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니까. 재밌는 영상은 아무리 봐도 아이에게 오래 봤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이미 1시간 넘게 봤어."도 마찬가지였다. 시간관념이 없는 아이에게 '1시간'은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이었다.



"하루에 한 가지만 보기로 했잖아."라고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해지자면, 지금까지 하루에 한 가지만 본 날은 손에 꼽았다. 엄마의 일관성 없음이 엄마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버린 거였다.



그렇다고 "안된다고 했잖아!" "너 자꾸 떼쓰면 이제 안 보여준다!"와 같이 윽박을 지르거나 협박을 할 수도 없었다. 감정이 격해질 때 튀어나오는 그런 말들은 늘 뒷맛이 씁쓸했다.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대치 시간은 더 길어졌다. 잘못한 건 아이라도, 사과는 엄마가 더 많이 하게 됐다.



육아서나 교육서의 갖가지 지침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멈출 것, 들어줄 것, 공감할 것, 긍정적일 것, 이성적일 것. 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위기를 빠져나갈 묘안을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아이의 감정도 가라앉히고, 엄마의 의도도 관철시킬 수 있는 최적의 대안. 그 열쇠는 아이에게 있었다.



"옥토넛 보고 싶지?"



해님이가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엄마가 옥토넛을 볼 수 있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눈물에 젖은 눈이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바로 '작은 우유'를 먹는 거야."



해님이에게 '작은 우유'란 자기 전에 먹는 200ml의 팩 우유였다. 분유를 뗀 이후부터 5세가 된 지금까지, 우유를 먹고 배를 채워야만 잘 수 있었다. 우유를 먹는 건 그의 오래된 수면 의식이었다.



"작은 우유를 먹으면 자는 거잖아. 자면 내일이 오잖아. 그럼 내일 옥토넛을 볼 수 있어. 먹을래?"



"응! 먹을래!"



농성이 마무리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식탁 밑에서 빠져나온 해님이는 빨대가 꽂힌 우유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고소하고, 시원하고, 달콤한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아이의 얼굴이 우윳빛처럼 환해졌다.



"내일이 오면 정말 좋아. 새로운 책도 읽을 수 있고, 새로운 만화도 보고, 엄마랑 새로운 놀이도 할 수 있어. 내일은 <노부영>도 보지 말고 <페파피그>도 보지 말고, <옥토넛>부터 보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스로 침대에 올라가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면 내일이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할 것 같아서였을까.







특수교육을 하면서 나는 <프리맥의 원리>를 자주 활용다. <프리맥의 원리>는 선호하지 않는 일을 하면 비로소 선호하는 일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학을 싫어하고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수학을 해야만 컴퓨터를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이마저도 싫은 것을 좀 견뎌야 달콤한 열매를 맛보는 법인데, 내가 건 조건은 해님이가 손해 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우유를 좋아하는 해님이에겐 우유를 먹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것을 하면 더 좋은 것을 얻게 되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잠을 자야 옥토넛을 볼 수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작은 우유를 먹어야 옥토넛을 볼 수 있어."라고 말한 작은 꼼수 덕분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내가 잘해서만은 아니었다. 아이 안에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충만하지 않으면 설득될 리 만무했다. 다섯 살에게 내일보다 더 좋은 선물이, 더 값진 상이 없었다. 해님이에게 내일은 이벤트고, 파티고, 축제의 향연이었다. 게다가 엄마가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아이가 평생 동안 거저 받을 수 있는 상이었다.



새로운 하루를 끌어올 동력을 얻기 위해 매일 밤 '작은 우유'라는 연료를 몸속에 콸콸 들이붓는 내 아이. 그를 위해서라도 내일은 조금 빨리 왔으면 좋겠다. 엄마가 간신히 유보한 시간이 아이에게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꿈조차 지루하지 않기를 바란다. 약속을 지키는 엄마가 될 내일나도 덩달아 기다려다.





<When Sophie Get Angry-Really, Really A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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