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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Dec 11. 2021

아이는 나를 웃겨주려고 큰다.



내 딸은 엉뚱하다. 재미난 생각을 잘한다.



"엄마, 내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이런 말로 대화를 시작할 때가 많다.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창의적인지 기특해하다가, 문득 섬뜩해진 적이 있다. 이 글은 그런 내용이다. 한 아이가 특정 성격을 갖게 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내용.





물론, 유전자는 무시할 수 없다. 언어 능력이 뛰어난 아이는 부모의 언어 능력이 뛰어난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의 전설급인 이종범 선수의 아들 이정후 선수가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 문제를 차치하고 다른 각도에서도 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생애 초기 아이가 어떤 모습을 보였을 때 부모가 관심을 가져주고 칭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분명 부모의 관심 영역이었을거다. 야구를 좋아하는 부모는 아이가 야구공을 가지고 노는 것만으로도 귀여웠을 것이다. 수학 능력이 좋은 부모는 아이가 처음 하나 둘 셋을 세는 순간에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 하면 부모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따라서, 아이는 부모의 리액션을 얻으려고 특정 재능이나 성격을 개발하지 않았을까. 아이는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놀고 싶어서, 예쁨 받고 싶어서 지금의 모습으로 커온 건지 모른다.


첫째를 키울 때 나는 참 무료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육아가 재미없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기가 답답하지만 해서, 아기 앞에서 텅 빈 눈을 하고 멍하니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첫 걸음마를 하고. 첫 말을 떼는 순간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상 발달을 하니 걸어서 다행인 거지, 대단히 경이롭게 여기진 않았다. 내가 아이에게 경탄하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유료 결제는 안된다고 못을 박았더니, 돼지 저금통을 태블릿 컴퓨터에 연결하려는 아이. 순간, 박장대소가 터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가 엉뚱한 말을 했을 때 가장 크게 웃었다. 어른이 생각할 수 없는 순수한 발상을 목격하면, 평범하던 일상이 좀 특별해졌다. 육아가 덜 지루하게 느껴졌다.


<출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예고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어린 마츠코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린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 무뚝뚝한 아버지가 마츠코가 그 표정을 지을 때만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군가 때문에 멋있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 때문에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첫째는 나를 위해 기발한 말을 습관적으로 준비했는지 모른다.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엄마를 한 번이라도 웃겨주려고. 그렇게 사랑받으려고.




그렇다면 둘째는 어떤가. 이 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두 돌이 아직인 아들은 책을 읽자고 하지 않아도 혼자 펼쳐서 책을 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책을 들고 와서는 5번이고 10번이고 읽어달라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건 아이 유전자의 적힌 본성인지 모른다. 엄마도, 아빠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둘째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 또한, 서글픈 해석이 가능하다.



둘째를 키울 때 나는 체력적으로 지쳐 있었다. 둘째는 아기니까 종일 돌봐야 했다. 4살에서 5살로 넘어가는 첫째도 잔손이 많이 갔다. 집안일까지 하느라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울지 않고 혼자 놀면 안심하고 무심히 내 볼일을 보곤 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책을 가져다 내밀면 그제야 아이를 돌아봤다. 책을 읽어주기 위해 하던 일을 멈췄다. 아이를 품에 안고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엄마의 냄새를 느끼게 해줬다. 단언컨대, 둘째에게 엄마가 가장 다정하고 상냥한 순간은 책 읽을 때였다.


아이가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입이 찢어지게 웃어주었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이가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다가가 관심을 보이고 놀이를 제안한 적이 얼마나 됐던가. 첫째가 창의적인 게, 둘째가 책을 좋아한다는 게 기특하고 자랑스럽다가도, 생각해 보면 다 미안한 일이다. 엄마의 선택적 반응의 결과 같아서다.



나를 웃겨주려고 크는 아이들, 나를 행복하게 하려고 유능해지는 아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인색하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겠다. 더 자주 웃어야겠다. 이유 없이 관심 가져줘야겠다. 아이들이 노력이 마츠코처럼 고생스럽지 않도록. 사랑받는 데 어떤 조건도 필요 없다는 사실이 평생 동안 당연해지도록.


<출처>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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