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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an 18. 2016

입맛의 비밀

분위기나 습관에 의해 달라지는 식품의 맛

        

     파도에 넘실 되는 공처럼 때로는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식품의 맛이다. 어떤 맛이라고 딱히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냇물처럼  변화하는 것이 식품의 맛이다.

    예전 어린 시절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 예전에 먹었던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마치 잘못 만난 인연의 식품을 대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의 입맛이 달라진 것이지 음식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다양한 맛을 찾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달짝지근한 것은 때론 좀 더 매콤하면서도 화끈한 것들을 찾아 새로운 보석을 만나는 기쁨과 욕망을 향해 걷고 있다가 다시 추억이 어린 옛날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 입맛 수준은 저만치 가있어 같은 음식도 같은 것이 아니라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데 말이다.


                                       

                                  

                                20년된 곰탕집에서 만나는 곰탕   - 노원구 하계도의 해주곰탕집 -



    똑같은 음식을 접하더라도 사람은 신체 조건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음식을 접하는 것처럼 다르게 느낄 수가 있다. 너무 배고파도 맛에 대한 편견이 따를 수 있고 전세 값을 올려달라는 주인집 아줌마의 목소리가 귓전에 남아 있어도 제대로 맛을 판별할 수가 없다. 또, 중요한 시험 결과의 발표를 앞두고 가슴이 쿵쿵 메아리치는 순간이라면 맛을 제대로 느끼기가 너무 힘들기조차 한다. 이처럼 생리적인 요인이외에도 심리적인 요소에 의해서도 맛을 느끼는 정도가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맛의 변화로 인식할 수 있다. 

    우리가 맛을 느끼고자 할 때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또 다른 요소로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 고풍적인 분위기나 매우 현대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좋은 장소에서 벽에 걸린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보면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음악을 듣는 분위기라면 평범한 와인마저도 이제까지 맛본 와인들보다도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로 먹는 곳의 분위기에 따라 더 맛있게 느껴지며 그 분위기에 대한 추억은 맛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게 된다.      


                 예술작품으로 가득찬 와인 테이스트룸   -캘리포니아 나파벨리 The Hess Collection -  



    커피회사나 음료회사에서 신제품을 만들고자 할 때 회사 내에서나 밖에서나  맛 테스트를 하게 되는데 이러한 맛을 평가할 때에도 오전 10시와 오후 3시를 선택하는 이유가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되는 시간이면 배가 부른 탓에 포만감에 도취하여 먹고픈 욕망이 없어져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밥을 먹은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배가 고파지면 맛없는 음식도 식욕이 반찬인 것처럼 맛있게 느낄 수 있어 정확하게 신제품의 맛을 평가하기가 곤란하다.      


    그런가 하면 처음엔 참맛을 몰라서 맛이 없다고 불편하게 느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식품의 맛에 익숙해지면서 맛이 있는 음식으로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외국인이 우리 김치나 청국장을 처음 대할 때 익숙하지 않은 냄새 때문에 몹시 싫어하고 거북하게 느끼다가 점차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가 있다.

    유학시절 필리핀 친구가 호기심으로 한국의 김치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기쁜 마음으로 사다 주었지만 ‘이 친구 김치 먹고 혼 좀 나면 다음부터는 이런 부탁을 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였던 나는 오판이었다. 한 달 동안 매우 조금씩 조끔씩 먹었던 모양인데 처음엔 맵다고만 생각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시원한 맛을 느끼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닭볶음 요리와 함께 먹으니 느끼함도 가시면서 점점 매력에 빠져버렸단다. 한 달 간격으로 김치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던 일이 점차 줄어들면서 일주일마다 사다 달라는 부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김치 맛에 중독되어 가는 외국인을 발견한 적이 있다.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우리의  맛있는 김치    -캘리포니아 산호세 한국마트 -


    이탈리아 시실리섬 위쪽에 있는 샤르데이냐 섬에는 유난히도 장수인구가 많다. 100세가 넘은 할아버지들이 산에 올라 양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청년 역할을 다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마을이 있는 곳이다. 이 곳에 가면 귀한 선생님들이 방문하였다고 내놓는 선물 중에 독특한 것이 하나 있다. 종이로 만든 봉투에 치즈를 숟가락으로 담아 넣고는 입구를 손으로 쥐어 막은 다음, 한 5분 정도를 기다리면 봉투 안에서  뽀드득뽀드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시 후 봉투를 거꾸로 세우고 입구를 살짝 틈을 주면서 열어 보면 하얀 벌레들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다름 아닌 구더기들이다. 치즈 속에서 이 구더기들이 발효하는 과정에 독특한 향을 만들어 내는데 마치 똥냄새와 같아 냄새가 역껴워 도저히 먹을 수 없다. 안 먹겠다고 뿌리쳐보지만 먹지 않으면 귀한 손님에 대한 예의를 박차 버리는 것 같아 먹을 수밖에 없다. 우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치즈의 향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그 치즈만 찾을 정도로 바뀌어 간다. 김치를 싫어하거나 샤르데이냐의 독특한 치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식문화를 이해하고 조금씩 적응해 나가는 가운데 맛있는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식문화 과정이 또한 맛을 변화시킨다.



                                청국장에서 끈적끈적한  뮤신 성분과 함께 나는 쾌쾌한 냄새


                      



   맛은 식문화에 의해 얼마든지 새롭게 변해가고 있어 어떤 맛을 좋아한다고 주장하기가 어렵다. 외국으로 우리 식품을 수출할 때 가장 큰 이슈는 과연 우리의 맛의 제품이 외국인에게 어필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맛과 맛을 좋아하는 트렌드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트렌드의 변화도 식품이 가지고 있는 재료로부터의 맛만 가지고  접근하기보다는 환경이나 분위기 또는 식문화와도 같은 콘텐츠를 연결하여 접근한다면 훨씬 더 용이할 수도 있다. 

     10 여 년 전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국내의 전통된장의 향에 대하여 문의를 해온 적이 있다. 어떤 종류의 향이 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미생물을 접종하여 발효를 시키는지, 그리고 그런 유사한 향을 얻을 수 있는 발효제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을 물어갔다.
 그 당시 "왜 익숙하지도 않은 된장의 향을 찾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의 음식 스타일이 일부 아시아권과 유사한 점이 있어 그들이 즐겨먹는 소시지와 샐 라미에 된장 향을 가미한 제품을 개발하여 출하하려 한다"는 점이다.   

     실로 놀랍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맛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고 있어 역시 다국적 대기업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유사한 ‘굴라쉬(Goulash)’라는 수프는 정말이지 한국식품인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식품을 즐겨 먹는 민족이라면 된장 향에 대해서 거부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이제 그들은 소시지와 샐 라미에서도 된장 향을 맛보게 되면 그들 고유의 소시지와 샐 라미는 흔적을 감추고 사라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굴라쉬를 좋아하는 민족이라면 결코 된장의 구수한 향을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다.     

    맛을 좋아하는 트렌드는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커피가 초기에 한국에서 시장을 형성하였을 때는 의례히 쓴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다국적 기업이 신맛이 강한 커피를 소개하면서 쓴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맛이 좀 강한 커피를 선호하는 쪽으로 변하였다. 최근에는 쓴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한 향을 원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이렇듯 맛에 대한 기준은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를 빨리 파악할 수 있어야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또 살아남을 수 있다. 

     미각의 변화와 맛을 느끼는 사람들의 변화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세계 식품 시장에서 우뚝 설 수가 없다. 이제는 우리만이  좋아하기보다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맛을 찾아 나서야 할 때가 왔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국립공원인 요세미티공원내에 흐르는 내천.-


  누구나 좋아하는 이곳 풍경은 세계인이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다. 맛도 마찬가지로 세계인이 좋아하는 맛을 찾아 가는 과정이 마치 흘러가는 물처럼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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