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대학원 공부는 왜 시작한 건데?
대학원 생활의 끝자락에 와있다.
대학원 생활은 정말 말 그대로 '자기 하기 나름'인 것 같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2년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한 시간으로 훅 지나가 버리기 쉽다. 누가 등 떠밀어 시작한 것도 아니거니와 따라다니면서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거나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 자기와의 싸움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손으로 썼는지 발로 썼는지 모를 발제'와 ‘다시는 열어보고 싶지 않은 최악의 기말 레포트’를 만나게 될 수 있고, 이로 비롯된 '자괴감'만 남기고 쓸쓸히 학기를 마무리하게 되는 불상사가 매 학기 반복될 수 있다.
대학원 진학 전에는 '이 학문을 제대로 깊게 공부해보고 싶다'가 대학원 진학의 목표이자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았다. 처음 마음이야 다 같겠지만, 대학원 입학 전 가졌던 원대한 꿈은 산산조각 나기 쉽고, 점점 궁극적으로 이 공부를 왜 시작했는가에 대한 동기를 잊기 쉽다. 대학원 입학할 때 썼던 입학 동기와 학습계획서를 적는 란에 나는 여러 가지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빼곡하게 적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는 펼쳐서 읽어보고 싶지 않은 입학 동기 지원서이다. 꾹꾹 눌러 담아놓은 지원 동기는 내가 대학원이라는 관문으로 걸어 들어온 궁극적인 이유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결론적으로 동기로만 남게 된 것 같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 다르고 (수치로 따지기는 어렵겠지만) 대학원을 통해 얻어가는 정도나 그 결과물도 다 다르다. 만족스럽지 않은 최종 학력을 석사 학력으로 보충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 혹은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나 전공한 학부의 학문을 좀 더 깊게 탐구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논문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그 과정으로 가기 위해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하는 동시에 비싼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 비싼 대학원 등록금에 대해 할 말도 참 많다. 월급 두 달치를 합친 금액을 가볍게 넘어 버리는 한 학기 등록금은 언제나 나에게 부담을 줬다. 그것이 족쇄처럼 나를 옭아매기도 했지만, 덕분에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어보게 만드는 힘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학자금이라는 빚을 만들기도 싫었고, 부모님께 의지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TAS를 하며, 등록금을 절감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한 학기는 휴직 기간과 맞물려 TAS를 진행하기도 했다.) 오롯이 공부에만 집중하며 내가 즐거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여러 가지 먹고 노는 즐거움을 포기한 궁핍한 대학원생이 되기는 싫었다. (이런 마음가짐부터 틀려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직장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했다. 처음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무슨 직업이든 상관없었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공부에 집중해보자 였지만, 일을 하다 보니 대학원 공부의 질과 직장의 일 이 양쪽의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다 잘해 내는 커리어우먼이 아닌 나는 매 학기 직장과 대학원 그 중간에서 어딘가에서 헤맸다. 어느 하나 확실하게 잘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결국은 월급 주는 곳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원래 돈을 벌려고 했던 이유가 됐던 공부가 뒷전으로 밀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17년 첫 학기 과정을 마친 뒤 본 전공에 베이스가 없었던 나는(학사와 석사 전공이 다르다.)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더 이상 공부를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휴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1년 여의 휴학기를 보내고서 다시 복학을 했다. 복학을 결심하기까지도 정말 수없이 많은 고민의 나날을 보냈지만, 결국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복학 결심을 하고 돌아왔을 때는 같은 학기에 입학한 동기들은 이미 수료를 앞둔 상태였다. 1년이라는 공백기를 매울 만큼의 기본 베이스가 없었던 나는 또 2학기, 3학기도 1학기 때와 같은 수순을 반복했다. 2-3학기 모두 계속 직장일을 병행하며 학문의 늪을 헤매고 다녔다.
나의 대학원 생활을 돌아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학기마다 시간에 쫓기며 발제를 하고, 기말 보고서를 두 눈 뜨고 차마 다시 읽을 수 없는 지경의 것으로 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전 학기의 발제문을 다시 읽는 일은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심경과 같을 정도이다. 솔직히 말하면, 수업을 듣는 시간 외에 따로 시간을 내어 스스로 공부했던 시간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매 학기 인스턴스식의 공부를 해왔다. 그로 인해 매 학기마다 면목이 없어 교수님을 피해 다니기를 반복하며, 방학만을 기다렸다. 학기 중간에 이 공부를 진짜 그만두어야 되나 내 길이 아니지 않나 고민한 것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동안 낸 등록금이 아까워서 혹은 한 번씩 나의 대학원 진학 동기 등이 떠오르기도 하며 이런 여러 가지의 이유에 부딪히면서 유예의 시간이 계속되다가 결국은 마지막 학기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 내가 왜 이 학문을 선택했는가. 그 이유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원동기에 적었던 대로 글 쓰는 일에 깊이를 더하고 싶어서였다. 처음 미학이라는 전공을 알게 된 건 한 친구를 통해서였는데, 이런 과가 있더라. 하면서 알려줬고, 이 학문이라면 내가 알고 싶은 분야에 대해 한계점을 극복하고 궁금증을 풀어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예술 비전공자인 나는 공연 분야에 종사하면서 공연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공연에서 더 나아가 다른 문화예술에까지 관심사가 넓어졌고, 보면 볼수록 이 예술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파헤쳐보고 싶었다. 그리고 연극이란 장르에 더 깊게 빠져들게 되면서 드라마 트루거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이 직업에 가까워지려면 문화예술을 다 아우를 수 있는 저 학문밖에 없겠다 싶었다. 좋아하는 연극을 보면서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연극이 만들어지는데 기여할 수 있는 직업. 바로 저건데, 하면서 눈을 반짝였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얕지만 또 진중한 이유로 이 학문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4학기까지 마친 지금 찐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야 조금씩 이 학문의 매력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대학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만, 이 감정이 반발심인지, 등록금이 아깝다는 억울함에서 오는 것인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학문의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까..? 나 논문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