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에서 한성대입구역까지 한 정거장을 걸으면서 멜론 재생목록을 플레이해 들었다.
재생목록의 노래들이 랜덤으로 돌아가다 짙은의 <사라져 가는 것들>이 흘러나왔다.
한 때 나를 감싸주던 공기와
한 때 나를 웃게 하던 웃음이
한 때 나름 절실했던 마음과
한 때 나름 소중했던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들이 되어
무너져가는 꿈들이 되어
흩어져가는 우주의 저 먼지들처럼
다시 만날 수가 없다네
사라져 가는 것들이 되어
무너져가는 꿈들이 되어
흩어져가는 우리의 발자취를 기억하네
- 사라져 가는 것들 가사 일부 -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에 회한의 감정과 아쉬움, 슬픔이 늘 나를 따라다닌다. 꽃 한 송이를 사서 꽂아둬도 언젠가는 시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이것이 우주가 순환하는 당연한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고부터 말이다. 무언가 사라져야 또 다른 무언가가 생겨나고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짙은의 <사라져 가는 것들>은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는 노래 가사다. 노래를 한참 듣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유가 비집고 들어왔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생성과 소멸을 겪는데, 그 와중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질 것이 아닌가 하고. 이렇게 태어나면 언젠가는 사라지거나 생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속에서 예외적인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평균 수명을 따져보았을 때 내가 80세-9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내 수명의 길이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길게 살아 있는 존재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비닐과 플라스틱.
예전에는 사라지고 없어지고 시들어 죽고 하는 과정들이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자연한 이치에서 벗어나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불편함이 생겼다.
내가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없어지는데 몇 백 년은 더 시간이 흘러야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몸서리가 쳐질 만큼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플라스틱, 병 등을 각각 소재에 맞게 분리수거만 잘하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알게 된 정보에 의하면 플라스틱 중에 재활용될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그렇게 분리수거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겠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밖에 나갈 때는 텀블러를 챙겨 나간다. 혹여라도 텀블러를 깜박하고 밖에 나온 날이면 어김없이 목이 말라오는데, 그럴 때면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 한 병을 꺼내 들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라도 참곤 한다. 물론 아직도 이런 반성적 태도가 몸에 완전 베진 않아서 아차 하는 순간 플라스틱을 소비하는 순간들이 있다.
카페에서도 빨대 사용을 피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주문할 때 미리 말하지 않으면 빨대를 꽂아 주는 경우가 더러 있어 난감할 때가 많다. 그나마 스타벅스는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실천하는 카페 중 하나라 그나마 가게 되기는 한다.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있는데, 플라스틱도 고쳐쓸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고쳐 쓴다는 생각 이전에 소비하지 않거나 플라스틱을 생산해 내는 기업들에게 플라스틱 생산 금지를 촉구하는 일이 더욱 깊이 있는 성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며칠 전에 아무 생각 없이 빵집에서 산 플라스틱병에 들은 오렌지주스를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고 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플라스틱, 비닐의 소비가 줄어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져 가는 것들,
앞으로 몇십 년 후엔 전 세계적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 1순위로 플라스틱과 비닐이 꼽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책이나 예전 기사를 통해서만 그것들을 보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