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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쭉정이 Mar 06. 2023

나의 친애하는 불안에게

그토록 불안했던 이유와 비로소 얻은 깨달음

22살, 나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일을 계기로 우리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고, 나 또한 살아오던 정체성이 뒤바뀔 만큼 아직도 가슴 아픈 일로 남아있다. 그 일 이후 나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고, 사정이 나아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열심히 사는 것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졌다. 열심히 살아야지만 상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옭아매고 들들 볶아댔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이 충족되어야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어떤 일에도 늘 끝을 보아야 하는 강박이 생겼고 사람관계 또한 명확히 떨어지길 바랐다.


불안해질수록 더 열심히 살았다. 원하는 부서로 발령받은 뒤 주말에도 출근을 했고 평소에도 자발적으로 남아서 야근을 했다. 특히 회사에서는 적응하기 위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렇게 1년 동안 거의 매달 100시간이 넘도록 초과근무를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안했다. 일도 적응했고 사람관계도 원만히 지냈는데, 내 마음은 불안감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한 번은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마음이 어두워지다 못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감정이 없어졌는데, 이상하게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이 안 보이니 내 상태를 아는 것이 두려워졌다. 잠깐의 숨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게 나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혼자서 3박 4일간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에서 만난 선생님이 현재 상태에 대해 물으셔서 내 얘기를 털어놨다. 마음이 보이지 않고, 마음을 보려니 두렵다고 하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호수 안을 들여다보려는데, 바람이 불면 호수가 물결쳐 흙탕물이 되어 보이지 않아요. 바람이 일어나서 그런 거예요. 호수를 들여다보려면, 물결친 흙탕물부터 정화해야 돼요. 정화될수록,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돼요. 괜찮으니, 그 과정을 그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세요. 정화가 되면, 내면이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그렇게 회복될 거예요.'


선생님 말씀대로 차분하게 내면을 바라봤다. 두려움, 분노, 슬픔이 순차적으로 지나갔다. 천천히 감정을 흘려보내니, 마침내 그 뒤에 숨어있던 본질적인 결정체를 만날 수 있었다. 마치 나의 어렸을 적 아이 같았는데, 아이를 만나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그랬어가 아니라 '그동안 애썼다'였다.


더 달리라고 다그칠 줄 알았던 마음과는 달리 오히려 애썼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순간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콸콸 터져 나왔다. 앞으로 달리기만 할 줄 알았지 참으로 나를 돌보않았다. 그동안 애써왔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비로소 나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힘들어했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과거를 끊어내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 산더미처럼 지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은 불필요한 것이거나 지나간 것이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지친 나를 알아주는 시간이었고, 그렇게 와 친해질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다. 



제주도에서 마음을 온전히 비워내니 편해졌다. 두려움의 원인을 알고 나니 부정적인 것들을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를 좋아하는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인생을 헤쳐나감에 있어 중심이 있고 부수적인 것이 있다면 부수적인 것들쳐내는 데에  힘을 빼기보다 중심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과거를 끊어내서 지금에 집중할 수 있다면 현재는 기회가 되고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럴수록 나라는 사람과 더 친해지고, 나를 수록 더 강해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습관처럼 불안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한번 깨달은 경험으로 자신을 채찍질해 오던 습관은 내려놓고 현재의 나를  수 있다면, 불안한 마음은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불안이 있기에 조금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 다만, 앞으로는 미워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 나의 친애하는 불안에게.




화 쿵푸팬더 대사 中,

'진짜 힘은 가장 자기 자신 다울 때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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