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서에서는 주로 고소 고발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데, 그중 고소인이 유독 사심을 갖고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고소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건은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다소 예민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옛날의 나는 그런 사건을 접수하더라도 다른 사건들과 다를 바 없이 법률적으로 처리했다. 혐의를 검토한 뒤 송치 또는 불송치 결정에 집중했던 것이다. 고소하게 된 배경, 즉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게 들여다보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에 대한 수사결과를 정리하다 보니, 결국 고소 고발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는 것을 꽤 경험할 수 있었다. 고소를 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처벌받게 하기 위한 증거들, 이에 대한 피고소인의 진술 등을 검토하다 보면 고소인이 어떤 이유에서 고소를 했는지, 고소인과 피고소인은 어떤 관계였는지 등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한 관계를 이해함에 있어 법률적 검토에서 그치기보단 그 너머에 다소 흥미로운 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수사는 결국 인간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수사관은 사건에 있어 법률적인 검토를 한 뒤 송치냐 불송치냐(옛 표현으론 기소 또는 불기소의견)를 결정할 뿐이다. 즉,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들의 칼자루로 사용될 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 관계의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사건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도한다. 고소장과 함께 첨부된 객관화되지 못한 증거자료 또한 쉽게 거를 수 있고 중요한 자료들에만 집중할 수 있다.
고소장과 증거 속에 숨어있는 사심어린 부분들은대게인간적인 부분들이었는데, 예를 들면 돈과 관련된 것이거나 경쟁상대 또는 경쟁사 관계, 또는 자존심과 같은 것들이다. 결국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그들의 숱한 싸움들을 보면서 느낀 점 중 한 가지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조금은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무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움에서 시작해 원망과 증오로, 더 나아가 복수심으로 시작된 고소 고발을 꽤 많이 경험했다. 그런데 어떠한 억울한 피해사실에 대해 고소 고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상대를 책잡고 공격하기 위해 고소 고발을 한다면, 그 마음이 과연 통쾌하기만 할까. 그렇게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면 목적을 달성하였다며 쾌재를 부를까.
내 경험에 의하면 아니었다.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가 서로의 고소인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명언 같은 글에서 이런 말을 보았다.
'약한 자는 복수를 하고,
강한 자는 용서를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무시를 한다.'
무시를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눈앞에 벌어져버린 일을 못 본 척, 그 어떤 감정 또한 안 남은 척, 어떻게 대놓고 무시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세상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또한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이 또한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인간관계에 대한 희로애락을경험해보면서 사람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사람이 미울 때도 있었고 좋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남게 되는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본인과 생각이 다르거나 본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대방 때문에 어렵다면, 상대방을 고치기 위해 힘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나답게 사는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상대방은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려니 하고선 무시할 뿐이다.
그렇게 조금씩 생각을 바꿔보다 보니 집착하던 인간관계를 조금은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세상엔 무시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수사관들은 고소 고발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 국가적 의무가 있고 실제로 어떠한 사건이든 사심 없이 법률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다만 결론적으로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너무 아파하거나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두운 감정을 마음에 계속 품기에는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