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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쭉정이 Feb 12. 2024

'실력 있는' 사람의 특별한 자세

강인한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현직에 있는 경찰관이지만, 아직 수사를 한참 배우고 있는 초보 단계의 수사관이다.


초보 수사관들은 다양한 죄명과 내용의 사건을 해결해 본 경험과 그만큼의 사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건을 다룰 때 쟁점을 정확히 뚫기보다는 수십 개에 달하는 사건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에 급급해진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보단 자기 편의적인 수사에 본인도 모르게 치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수사관에게 가장 편하고, 수준이 그것밖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사건이 주는 엄중함을 모른 채 개념 없이 간과하고 있는 것, 이들에게 어려운 사건을 배당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최근,  수준에서는 조금 어려운 사건이 배당되었다. 피해자는 없는 사건이었지만 해석해야 하는 법률이 난해했다. 초보인 나는 기로에 섰다. 모 아님 도였다. 적당한 수준으로 마무리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넘나들며 끝까지 해석과 판단을 해볼 것이냐.


나는 초보수사관이지만 그만큼 또 겁은 많았다. 그래서 도를 선택했다. 히려 모를 택하는 것이 수사에 있어서 리스크가 훨씬 크다. 사건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적당히 마무리한 만큼 나머지에 대한 대가를 오롯하게 치르게 되는 신기한 에너지가 있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사이에서 법이라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찰관의 사명 때문일까.


다행히 다른 사건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 놓은 상태였고, 이 사건에 투자할 시간이 비교여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오로지 이 사건에만 집중했다. 매주 수 개의 사건이 들어오고 수 개의 사건을 쳐내야 하는 상황에 한 사건에만 매달려있는 것은 어쩌면 미련한 행동일 수 있다. 그렇지만 겁쟁이는 도를 선택했으니 어쩔 수 없다. 오롯이 기록과 판례만 분석해야 할 뿐이다.


머리털이 한 움큼 빠진 채 에이포 한두 페이지로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팀장님에게 칠판에 써내려가며 앞으로 이렇게 진행해 볼 계획이라고 보고드렸. 참고로 팀장님은 일선서부터 본청까지 일평생 수사부서에 남은 거의 유일한 사람으로,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수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다.(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다.)


팀장님이 판을 한참 보시더니, 한 번도 나에게 안심해 본 적이 없던 팀장님의 얼굴에서, 기쁨이 묻어났다. 인정받는 첫 순간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마마마만큼'의 노력을 들여야, 완성된 수사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가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나를 위하는 것도, 편의를 위한 것도 정답이 아니었다. 오로지 이 사건을, 내가 아닌 3자의 가치를 위해, 법과 원칙에 맞 공정한 판단을 립하기 위한 '피땀을 흘리는 노력을 담아내는 것이' 진짜 수사였다.





'희망을 잃는 것은 정의의 적이다.
희망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진실을 왜곡할 때도.'
 - 영화 '저스트 머시(JUST MERCY)' 변호사 대사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쓴 채 수년간 복역 중인 흑인 월터를 위해 백인 권력과 맞서 싸웠던 '브라이언 스티븐슨' 변호사의 실제 진술이다. '저스트 머시'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그의 살인 혐의는 검찰이 재심단계에서 모든 혐의를 기각하면서 무죄로 풀려났다.


타인을 위해, 공정하게, 그리고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실존 인물 변호사의 스토리는, 영화 같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였다.




완성된 수사를 하려면 두 가지가 필하다.

첫째, 숭고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무엇보다 진실된 피와 땀이 녹아져야 한다. 진실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둘째, 내가 아닌 인, 제3자, 사회를 위수사를 할 때 장 빛이 난다. 강력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공권력을 부여한 이유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봉사하라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고 잘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열심히 하고, 정직하고, 나의 편의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타인을 위하는' 수사는 가장 밝게 빛난다. 사심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 법과 원칙에 입각해 철저하게 따져보는 것이 완성된 수사였다.


일이 주는 숭고함과, 국가가 허락한 공권력과, 사명에 맞는 행동이 주는 산물인 것 같다.






수사는 곧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직 한참 멀었다.


각자의 장소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들을 작게나마, 멀리서나마, 응원한다.

꾸준히 쌓아 올린 실력은 언젠가 빛을 발할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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