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기 Dec 29. 2023

아버지 언제까지 일만 하실 거예요?

부전자전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하셨다. 나는 살면서 정년퇴임한 경우를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첫 직장에서 직급이 '대리'셨던 분인데 회사의 우편물을 담당하셨던 분이셨다. 다른 한 번은 바로 아버지의 경우다. 보통 회사에서는 50대 초/중반에 회사를 떠난다. 그러하기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직장을 다녔다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제는 고생 그만하시고 여생을 다른 방향으로 보내시면 어떨까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일을 하신다. 정년퇴임 후 개인이 운영하는 건물의 관리인으로 취업하셨다. 보일러 관련 자격증 등 기타 자격증이 많으셨던 덕분이다. 하지만 곧 기존에 근무했던 곳에서 부르셔서 계약직으로 다시 공무를 보셨다. 아버지는 기뻐하셨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초등학교 보안관으로 근무하고 계신다. 기존 근무했던 곳보다 계약기간이 더 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을 마치시면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깃발을 드시는 일을 하실 거라 한다. 


 나는 아버지가 남들처럼 전원주택을 지어 사시길 바랐다. 아이들과 아버지 집에 놀러 가 숯불로 바비큐도 하는 등 아버지 덕에 주중 도시생활을 벗어나 주말 전원생활을 하면 좋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는 일하는 게 좋다고 하신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지만 언제까지 일하시려고 하시는지, 언제 쉬실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머니와는 몇 번 싱가포르나 일본으로 가족여행이란 것을 다녀왔지만 아버지는 일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열심히 공부하셨다. 앞서 언급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셨다. 그 옛날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내가 텔레비전을 볼 때도 아버지는 책상에서 꼼짝 앉고 공부만 하셨다. 나도 그 피를 조금을 이어받았다. 대학시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5시 새벽예배에 갔다가, 거의 첫차를 타고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그 피를 내 딸도 조금 이어받았는지 초등학생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수학문제를 푼다.   

 

 나는 요즘 불안하다. 언제까지 내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정년퇴임은 꿈같은 얘기지만 만약 한다면 약 17년 정도를 더 회사를 다녀야 한다. 정년퇴임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아이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15년 이상은 더 일을 해야 한다. 까마득하다. 그리고 자신이 없다. 지금까지 일한 만큼 더 일 해야 하다니. 지금까지 삶도 충분히 고단했는데. 하지만 오늘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 피를 조금은 이어받았으니까. 그리고 그 피가 내 딸에게도 이어진 것 보면 나도 아버지의 발 뒤꿈치는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정년퇴임을 하시고도 계속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늦은 나이에도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무언의 응원이 느껴진다. "불안 해 하지 마라. 너도 결국 해 낼 수 있을 거다"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의 유익과 유해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