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몸을 움직일 수 조차 없을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내게 명확하지 않다. 가끔 친구들이 말할 때마다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더 많다. 그때 내 별명 중 하나가 '걱정의 대가'였던 것 같다. 물론 실제 그랬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나의 정신과 육체는 많이 피폐 해져갔다. 아마 일상의 루틴을 많이 어겨서였다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출근을 했던 루틴이 바뀌었다. 매일 아침 9시 출근 전에 가까스로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책상 앞에 앉는 것으로 출근을 대신했다. 오랜 기간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집 밖으로 나가는 일도 줄면서 우울감과 체력 저하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허리 디스크에 큰 손상이 왔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평소와 동일하게 일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순간 크고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한 걸음조차 내딛기가 어려웠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걷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로부터 수개월동안 의자에 앉지 못하고 누워서 일을 해야 했다. 처음으로 회사에 병가를 내기도 했다. 의자에 앉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제 사무직 일은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건가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한의원을 다니며 조금씩 걷기 시작할 즈음 생활을 바로 잡기 위해 수영장을 다시 다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수영 강습을 들었다. 고3 때부터 수영을 했으니 중간에 쉬긴 했어도 그래도 최소 십오 년 넘게 한샘인데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수영을 하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으니 공포가 느껴졌다. 가슴정도 깊이 물에서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호흡과 심장이 빨라지고 얼굴은 벌게졌다. 50-60대 이상 여성분들과 함께 속도를 맞춰 수영하는 것이 버거웠다. 매 수업 때마다 물속에서 불안감이 찾아들었다.
다행히 수영은 효과가 있었다. 매일 아침 새벽수영을 다니며 불면증을 치료하고 루틴을 찾아갔다. 허리 통증도 무리하지 않으면 괜찮았다. 처음에는 3시간, 그리고 좀 더 지나자 5시간, 그 후로는 8시간 일을 해도 허리 통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기뻤다. 허리가 다 나아서도 있지만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이 현실이 되지 않아서 기뻤다. 인생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자그마한 승리를 한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나는 꾸준히 루틴을 이어나갔다.
어느새 2023년 12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사람들은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올해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시선은 바로 지금과 바로 앞 미래에만 좁혀져 있다. 최근 어려운 일을 당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이 전개될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짜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라 두렵기만 하다.
불안을 마주할 때 좋은 점이라면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구석기시대 우리 선조들을 동굴밖 야수들과 대결하기 위해 그들을 사냥할 무기를 만들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선조들은 준비 없이 잡혀 먹혔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이 해로운 점은 멀리 그리고 넓게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읽은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불안이 우리의 집중력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했다. 그래서 기본 소득 또는 복지로 삶이 안정이 되지 않으면 환경과 같은 장기적인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풀어나가기 어렵다 했다. 노후문제로 불안해하는 대한민국이 단기적 관점으로 주식시장과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에 접근하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지나고 보면 인생에서 매번 불안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불안의 크기만큼이나 현실이 혹독하지는 않았다. 이 전글에서 쓴 것처럼 한쪽이 막혔을 때 잠시 후 다른 문이 열렸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이번을 계기로 불안 대처하는 나의 내면 근육이 더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