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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an 04. 2021

부네치아 같은 사랑

 크리스마스 연휴에 부산에 다녀왔다. 나는 부산이 고향이지만 부산으로 여행을 가는 게 좋다. 자주 부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아마도 바다와 광안대교, 그리고 묘하게 낮고 키치한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풍경 때문인 것 같다.     

 

 25일에는 장림포구라는 곳에 처음 가보았다. 부산에 가면 꼭 광안리 바닷가에 가는데 이번에는 다른 곳에 가보고 싶었다. 더더군다나 보통은 기차로 가는 부산이지만 이번에는 호기롭게 장장 다섯시간을 차를 몰아서 갔기에 나에게는 어디든 차로 갈 수 있다는 특권이 있었다.     

 

 장림포구는 ‘부네치아’,  그러니까 일명 ‘부산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누가 짓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런 별명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 싫어하는 이유는 괜한 비교 대상이 생겨버려 “베네치아 같은 소리 하네”라고 말하며 실망하는 일이 불필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인데, 좋아하는 이유 역시 “우와, 부네치아다!”라고 말하며 잠깐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무 살 때 베네치아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물이 그리 깨끗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베네치아와 부네치아가 실제로 조금 비슷하기는 했다. 날씨가 아주 따뜻한 크리스마스였다. 부산이라서 더 그랬다. 그리 깨끗하지는 않은 장림포구의 물이 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후 열두 시가 막 지난 크리스마스의 장림포구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좋아하고 있는 애와 서먹하게 떨어진 채로 햇살을 느끼며 그곳을 잠깐 거닐었다. 베네치아를 흉내 내려 풍차나 시계탑 따위의 모양으로 지은 무지개색 건물보다는 ‘돌핀’이라고 적혀있는 배가 귀여웠고 ‘부네치아’가 스산하게 방치되어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애와 그곳을 함께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올해는 사계절을 그 애 때문에 슬프고 즐겁게 보냈다. 30대 중반이 되어도 연애는 유치하고 치사했다. 그 애와의 관계는 그중에서도 제일 볼품이 없었다. 심지어 우리는 관계를 이어가는 동안 몇 번 만나지도 못했다. 그 애가 부산에 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주 싸워 연락을 끊었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온종일 연락을 그렇게 자주 하는 사람도 처음이었지만, 메시지나 전화만으로 그렇게 매번 싸우게 되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단 한 번도 그 애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생각과 ‘좋아하는 감정’은 별개였다. 처음 그 애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 애의 목덜미에서 나던 향수 냄새 때문이었다. 부산을 떠나며 1월이 생일인 그 애에게 향수를 선물로 주었다. 그 애의 취향과 생김새, 성격을 떠올리며 성심껏 고른 향기였다. 계속 그 애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애는 내가 싫어하는 성격을 모두 다 갖추고 있었다. 보통의 연애에서 기대하는 것을 그 애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었고, 그 애는 자주 날 괴롭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애가 싫어지지 않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관계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부산에 그애를 만나러 갔다. 결국 끝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우리 관계에 조금의 희망도 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부산에서 그 애와 돼지국밥도 먹고 장림포구에도 갔지만 돌아오고 나서는 또 그 애와 이틀을 연이어 싸웠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런 식으로도 얼마든지 그 애와 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터였다. 어쨌든 아직 그 애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어쩐지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나는 이 관계를 완전하게 끝내고 싶었다.     

 

 부산 여행에서 나는 부네치아에서 머물렀던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부네치아’라고 당당하게 적혀있는 이정표를 보며 “와, 여기 정말 부네치아라고 적혀있네” 우리는 얘기했다. 시선이 달라서 우리는 다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애는 내가 사진을 찍는 방법을 가지고 나를 짓궂게 놀렸다. 나는 그 애가 그런 것을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장림포구에는 까맣고 작은 물고기가 많았다. 조금 더 걷고 싶다는 말을 하는 대신 그애를 따라 차로 발걸음을 옮기며 ‘부네치아’에 대해 생각했다. 그냥 ‘장림포구’라고 부르는 대신 ‘부네치아’라는 이름을 붙이는 많은 것들, 엉망진창이고, 웃기고, 사랑스럽고, 서글프고, 바보 같고, 귀엽고, 쓸쓸하고 따뜻한 것들에 대해서.     

 

 ‘애인의 애인에게’라는 소설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인간은 각자의 사랑을 할 뿐이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한다. 그는 그의 사랑을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할 뿐,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너무나도 외로워 내 그림자라도 안고 싶어졌다.’     

 

 모든 사랑은 반쪽짜리일지 모른다. 분명 나빴지만 그 애를 나쁘게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그 애의 나쁜 부분 중 어떤 것은 나의 일부분을 채워줬을 것이고, 나의 맹목적인 마음도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었을 테니까.      

 

 부네치아라는 어감이 바보 같아서 슬픈 마음을 오, 부네치아여, 부네치아 같은 사랑이여, 라고 읊조려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나는 크리스마스가 오면 부네치아를 생각하게 될까? 부네치아 같은 사랑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다음 사랑은 베네치아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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