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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3. 2017

09. 심리치료 vs 약물치료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



“교수님, 저도 질문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털어놓은 남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납니다.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받고 학생상담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제 우울증은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약을 먹으니 우울한 기분은 많이 나아졌는데, 비관적인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아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도 심리상담을 권하셨고, 저 역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담은 도움이 되었나요?”
“네, 사실 약을 먹으니 우울한 기분은 사라져서 좋았는데, 생각은 여전히 비관적이라서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우울하지 않은데 마치 우울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거든요.”



학생의 표현이 재미있어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됩니다. 실제로 우울에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감정의 우울은 처지고 힘 빠지는 기분을 말합니다. 우리가 보통 우울하다고 말할 때의 느낌이지요. 한편, 생각의 우울도 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비관적인 생각으로, 생각의 우울에 빠지면 뭘 해도 안 될 것 같고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행동의 우울이 있습니다. 감정과 생각의 우울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인데, 자살이나 자해, 불면이나 과다수면 등의 증상으로 표출됩니다.

약물은 그중 감정의 우울을 조절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입니다. 감정의 우울만 있던 사람이라면 약물 복용으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감정의 우울은 생각과 행동의 우울로 번져 나갑니다. 생각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약물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이 필요합니다.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고, 기존 생각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지요.

“심리상담을 통해 비관적인 생각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면서, 제 생각이 왜곡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보다 현실적이고, 저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학생의 용기 있는 고백에 교수님은 흐뭇한 얼굴로 박수를 치십니다. 학생들도 교수님을 따라 박수 세례에 동참합니다.
“정말 다행이고 좋은 일이네요. 그런데 질문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궁금한가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약물 치료는 의사에게 받고, 심리치료는 상담자에게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친구는 불안이 심해서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의사에게 약물 치료만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리치료를 권했더니, 자신은 약물 치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더라고요.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꼭 병행할 필요는 없나요?”
“학생처럼 약물의 도움을 받고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어요. 그러나 약물 치료를 잘 받고 있는 사람에게 심리치료를 강요하거나, 반대로 심리상담만 받겠다는 사람에게 약물 치료를 강요할 수는 없답니다. 그런데 심리상담 전에 반드시 약물 치료를 선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상담을 받기 전에 반드시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웁니다.

“상담자와 마주 앉아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하다면, 약물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심각한 우울이나 망상, 환각 같은 증상이 그렇습니다. 전문 용어로는 정신증적 증상이라고 하죠.”

정신증 혹은 정신병이라는 말은 신경증과 대비되는 용어로, 현실 검증력이 없는 심각한 증상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힘들지만 현실 검증력이 있다면 신경증이라고 부릅니다. 현실 검증력이란 내 생각(내적 현실)과 실제 현실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비교·검토하는 능력입니다. 다른 말로 현실감각이라고 하는데, 현실 검증력이 있는 사람은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지만 현실 검증력이 없으면 이런 것이 불가능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망상입니다. 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망상에 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하더라도, 자신의 생각(망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증거를 의심하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속인다고 주장합니다. 현실 검증력은 심리상담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정신증적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약물 치료가 선행되어야 하고, 심리치료는 그다음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심리상담은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받는다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이 받는다는 말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교수님은 강조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생각과 현실을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사람들, 즉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힘이 있고 건강한 사람들이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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