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코스요리>
『제5경영(The Fifth Discipline)』으로 유명한 피터 센게(Peter Senge)는 집단의 창조성이 보이는 양면성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노래, 춤, 격투나 달리기 시합 등은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모아서 집단의 방식으로 커다란 활력과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생활 속 여러 분야, 예를 들어 교육, 관리, 시공, 의료를 비롯한 이런저런 일상의 스트레스를 처리할 때는 왜 집단의 창조성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까?
노래하고 춤출 때, 혹은 달리기 시합에 참여했을 때, 사람들은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보다 조금이라도 심각한 일을 할 때는 조직, 직급, 분위기 및 결과에 대한 예상 등의 영향을 받아 하고 싶은 말을 시원스레 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아 마음과 다른 엉뚱한 소리를 한다. 특히 자신보다 권력이나 권한이 더 많은 사람의 생각과 관점에 맞춰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집단은 양극단의 예상치를 상쇄하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의 지혜를 효과적으로 발휘하지 못한다.
정리하자면 집단에게 부족한 것은 지혜가 아니라 지혜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구두장이 세 명이 제갈량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게 하고 싶다면 각각의 구두장이들을 더 탁월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제한과 금기를 없애서 그들이 더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월드카페(World Cafe)가 바로 이러한 시스템이다. 월드카페는 후아티나 브라운(Juanita Brown)과 데이비드 아이젝스(David Isacs)가 1995년에 개발한 일종의 ‘카페식 대화기법’으로 카페와 유사한 공간에서 창조적인 집단 토론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생성하는 토론 방식이다. 마치 죽마고우들과 함께 모여 커피 한 잔을 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교류할 때 사람들은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
커피향이 감도는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다. 선입견도 편견도 없이 자유롭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서로 부딪치고 융합되면서 더 깊은 사고가 가능해진다. 그러면서 모두 함께 난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커피 한 잔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마법’이다. 물론 진짜 커피가 아니라 추상적인 의미의 커피지만.
이 커피의 힘은 어디에나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 온갖 다양한 조직 속에서 출현하고 있다.
HP의 밥 비즐(Bob Veazle)은 ‘커피 한 잔’의 커다란 힘을 실감한 사람이다. 잉크젯 프린터 부문의 안전생산 팀장인 그는 전 세계에 분산된 대규모 생산 공장 다섯 곳의 직원 1만 5,000명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처음에는 사고율이 무척 높았다. 오리건주의 코밸리스(Corvallis)에서는 매년 직원 100명당 6.2명이 작업 도중 다쳤다. 푸에르토리코 공장의 사고율은 4.1%, 아일랜드는 2.5~3%였다. 비즐은 사고율을 낮추기 위해 듀폰(Dupont)의 안전 관리기법 스톱(STOP)을 선택했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 이에 비즐은 다시 ‘카페 스타일 토론회’를 열어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청취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신기하게도 사고율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코밸리스는 6.2%에서 1.2%로, 푸에르토리코는 4.1%에서 0.2%로 사고율이 낮아진 것이다.
평범한 구두장이들의 지혜가 즐겁고 하나 되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 결합하여 가장 가치 있는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결과였다.
이 외에 멕시코 국가사회사업재단(FONAES), 빅토리아 대학교(University of Victoria) 법학대학원, 스칸디나비아의 지속발전을 위한 포럼, 아프리카 장애인 여성 조직,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 사우디 아람코(Saudi Arabian Oil Company) 등 도처에서 ‘카페’가 열려 월드카페의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커피는 어디에나 있고, 커피가 못할 일이란 없다!
강조하건대 집단의 지혜와 창조력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지혜의 다이아몬드는 다른 곳이 아니라 당신의 뒷마당에 묻혀 있음을 명심하라. 이 다이아몬드를 캐내려면 굴착기도 삽도 필요 없다.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다!
물론 그 성공의 전제는 당신이 ‘모두와 함께 커피 마시기’의 원칙과 기교를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