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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하 Sep 19. 2016

회색지대

밀정

 민족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역사적 치부는 매우 다양하다. 그건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짓밟힌 과거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자신들이 행한 과오에 대한 무지막지한 후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과거의 상처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느냐이다. 이는 분명히 현재 시점에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와 맞닿아있다. 지금 우리가 어느 역사 안에 있느냐에 따라 과거의 부끄러움은 '그럴 만 했다' 혹은 '다시는 그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의 간극만큼이나 다양하게 형상화된다. 요컨대 역사라는 건 기억하는 이의 시점에서 달라지는 것이다. 

 쓰고 보니 한국은 지금은 적당히 시간이 흘렀고 상대는 반성하고 있으며 보상금도 받았으니 이제 다 잊자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당장 상대와 관계를 회복하는게 중요하니 과거쯤이야 이제는 모두 다 묻어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이 역사를 되짚어가며 해야 하는 일은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라는 만병통치약을 자가처방하는 게 아니라 '당시에 그들 만큼이나 우리도 언젠가 분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후자의 질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을 이가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밀정'은 거리낌없이 그 묵직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이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그들'에 대한 실화를 풀어놓는 데 기인한다. 밀정은 실제 있었던 무장독립단체인 의열단과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황옥은 일제 시대 조선인 경찰이었던 인물로 독립군을 잡아들여 경부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그는 어느 순간 의아한 선택을 한다.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시현을 도와 상해에서 폭탄을 기차에 싣고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재진의 밀고로 김시현과 함께 기차 안에서 체포된다. 황옥은 법정에서 이 모든 것이 의열단을 잡기 위한 비밀작전이라고 말했으나 아직까지 진위는 확실치 않다.

 영화는 김시현을 김우진으로, 황옥을 이정출로, 김원봉을 정채산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바꾸면서도 이야기의 큰 줄기는 바꾸지 않는다. 이정출은 회색지대 안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과거에 독립군을 돕다 일제 경찰이 된 인물이 독립군을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고 갈등한다. 그리고 기차 안의 한 장면에서 그는 흑과 백의 영역 중 어느 하나를 순간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오로지 감독의 추정에 의해 나아간다. 황옥의 이야기가 아닌 이정출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추정은 어찌됐든 희망적인 결말에 다다른다.

 밀정은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 한 지점을 뭉개버린다. 이정출이 돌연 입장을 바꾸기에는 동기가 너무 부족하다. 그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양심이나 애국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같이 잡혀 고문을 받는 의열단원들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보기도 어렵다. 설정 상 이정출은 이미 독립군을 배신하고 일제에 협력하는 인물이며 그 과정에서 독립군들을 수없이 심문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굳은 신념을 가진 인물이 된다. 이는 기차 씬까지 이정출이라는 개인의 심리를 중심으로 팽팽하게 조여오던 서사의 매듭이 한 순간에 풀려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건 결국 이정출이 마음을 돌리게 된 동기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들이미는 건 이정출이 왜 마음을 꿨는지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출이 모종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끊어질 뻔한 의열단의 이야기는 정작 마지막까지 갈등하던 이정출 덕분에 화면 밖에서도 이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억해야 할 인물을 기리는 것을 넘어 마치 관객이 위인이 된 것 마냥 과거의 상처에 진통제를 치사량만큼 투입하는 역사 영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대개 그런 영화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역사 안에서 보기 좋은 것만을 가공하거나 심지어는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경계에서 갈등하면서도 누군가는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암울한 현실을 바꿔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라를 구한 인물의 이야기는 대개 영웅담만이 전해지곤 한다. 

 이런 이야기에는 맹점이 하나 있다. 중간에 마음을 바꾼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고민하다 결단을 내린 인물이 애초에 거의 없다. 간혹 마음을 바꾼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외부와 결탁한 변절자가 대부분이고 그는 극 중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으면서 아군의 사기 진작용으로 쓰일 뿐이다. 그러나 밀정은 이정출이라는 인물을 그런 식으로 간편히 소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뒷 이야기를 통째로 넘겨버린다. 나는 이 이야기가 차라리 현실감 있는 미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밀정'의 영어 제목은 'The Age of Shadows'이다. 영화가 조명하는 건 변함없는 선과 악이 아니라 그림자들로 가득친 시대 안에서 빛을 더듬어나가는 개인의 이야기다. 그리고 영화는 그림자를 걷어낼 누군가만을 기다리는 이에게 조소를 보낸다. 극의 막바지 부분에서 이정출은 친일파의 집에 찾아가 독립이 오긴 할 거 같냐고 묻는다. 그리고 친일파는 당신같은 놈들이 있으니 되긴 될거라 답한다. 자신은 누릴 걸 다 누리고 있을테니 당신들은 독립을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다. 이어서 이정출은 일제에게 받은 훈장을 던지면서 이건 얼마나 쳐줄거냐 물으며 미소짓는다. 나는 이 미소를 보면서 가슴이 서늘했다.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건 뜨거움과 자랑스러움보다 더 질긴 반성과 자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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