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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하 Sep 27. 2016

언젠가는 배운다

 가끔씩 삶의 몇 장면은 그것이 벌어진 상황과는 무관하게 엉뚱한 감상을 낳곤 한다. 그리고 그 감상은 뒤에 이어질 무언가를 결정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무언가가 뒤에 이어질 몇 장면이 아닌 삶 전체를 지탱하는 한 축 일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뜻하지 않게 밀려온 것들이 오히려 애써 기억하고자 했던 것들보다 한참을 머물 때가 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엉뚱한 감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everybody got to learn sometime'.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곱씹어봐도 그 장면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과연 그 둘은 'okay'라는 말로  이전까지 겪어왔던 모든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믿는걸까. 그리고 더는 기억을 지울 수 없는 상태에서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개인적인 당혹감과는 별개로 꽤나 많은 사람이 이 결말을 '사랑하는 이들은 언젠가 이루어진다'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저 장면을 꽤나 좋아하는 건 순전히 그 때 흘러나오는 노래 때문이다. 맞다. 모두들 언젠가는 배운다. 나는 이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직도 '모두들 언젠가는 배운다'라는 어귀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보다는 덜 무책임하고 '시간이 약이다'보다는 신뢰감 드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영화를 본 이후에 이 문장은 일종의 부적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그 둘은 과연 행복하게 살았을까. 언젠가 다시 헤어졌을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들은 설렘이 권태로, 권태가 후회로, 후회가 상처로 이어지는 뻔한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다. 이전까지 똑같은 결론에 이르던 과정을 송두리째 까먹은 채로 다시 만났기 때문에 더 그럴 수 밖에 없다. 언젠가는 모두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평소에 나는 좋은 사람이란 결론보다 과정을 기억하고 상대에게 자신의 가치를 종용하지 않으며 혀와 가슴의 방향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좋은 사람의 기준이 그렇게 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언젠가 다들 배울테니 나와 타인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면 족한 거 같다. 어쩌면 좋은 사람의 기준은 내가 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할 줄 아는 사람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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