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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하 Mar 05. 2016

변하지 않는 것들

응답하라 1988

  우리는 모든 순간을 선명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 때 그 장소의 희미한 기억들을 더듬어가며 좋은 것들은 추억으로, 나쁜 것들은 흑역사로 남겨둘 뿐이다. 각자가 가진 흑역사는 다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추억들만큼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끼 밥을 얻으려 들락날락 하던 옆집 이모의 넉넉한 웃음과, 동네에 하나쯤 있었을 법한 구멍가게에서 무료하게 앉아있던 주인아저씨의 멍한 표정과 같은 것들. 그러한 것들은 그 때 그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과거보다 선명한 현재를 살아가느라 떠올리지 못할 뿐이다. 정말 우연히 어떤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지금이 정확히 그런 순간이다. '응답하라 1988'은 그 시절을 보냈던 이에게 선명한 과거를 재현해준다. 쌍문동과 같은 동네에서 덕선이, 정환이, 선우, 택이와 같은 친구를 만났던 이들은 지금 드라마를 보는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때의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있다. 아마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자식들에게 어릴 적 자그마한 추억들을 풀어놓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조차 '1988'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갓 어른이 된 이들에게 1988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고대 로마만큼이나 현실감 없는 까마득한 과거임에도 그렇다.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모든 부모들의 이야기는 곧 자식들의 이야기이다. 극 중 동일은 상집에서 형을 안고 세상이 떠나갈듯이 울고, 성균은 자신의 생일날 예전에 녹음해 둔 테이프를 들으며 엄마한테 살갑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그런가 하면, 선영은 자신을 박대하는 시어머니를 모질게 밀쳐내고 꿋꿋이 살아가면서도,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는 자신의 서러움을 엉엉 울며 뱉어낸다. 선우와 진주를 탈없이 키워내는 어머니이자 남편 없이도 억척스레 살아가는 가장이, 펑펑 울어댄다. 자식은 부모 앞에 항상 이렇게 작은 존재다. 자식은 항상 부모를 그리워하며, 그 때를 후회한다. 

 부모가 자식이라는 말은, 그들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들도 누군가에게 설렘을 느끼며, 사소한 것으로 고민하며 연약하다. 택이가 덕선을 보고 설렘을 느끼듯이, 택이의 아빠인 무성도 선영을 좋아한다. 그리고 둘이 상대에게 관심을 표하는 방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한편 일화는 남편인 동일이 없는 형편에 남을 돕고 다니는 게 걱정이다. 그런 남편에게 지청구를 늘어놓는 것이, 자신이 나쁜 사람인 것만 같아서 속상하다. 그들도 우리와 다 똑같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감정의 크기가 줄어들며 상처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는 영웅 같은 존재가 아니다. 다만, 지나온 세월의 경험치가 쌓여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쑥쓰러움을 느낄 뿐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의 젊은 우리 또한 언젠가 어른이 된다.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변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주위의 시간과 공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슬퍼한 일은 아니다. '응답하라 1988'을 소개하는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나온 추억은 아련히 떠올라 밤잠을 뒤척이게 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발판이 된다. 우리의 부모가 지금 그 때를 그리며 추억을 떠올리고, 그 시절을 모르는 우리조차 그 시절의 따스함을 상상해 보듯이, 우리는 아마 '응답하라' 뒤에 붙는 지금을 추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식도 지금을 좋았던 때로 기억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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