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02. 절망밖에 없는 남자_기억 삽입술
case 02. 절망밖에 없는 남자_기억 삽입술
기억을
수술을 통해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겐 추억이 없어요.
좋은 기억 따윈 가지고 있지 않아요.”
“모든 기억을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삶을 지탱하는 건 기억이거든요.”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그 사랑은 대부분 기억으로 구성되며
자신이 사랑했던 기억과
자신이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생을 이어나간다.
모든 사람이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사랑받은 기억이 없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 내원한 환자의 경우는 좀 달랐다.
그는 사랑받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사랑받은 기억이 절망적인 기억에
잠식당한 케이스였다.
“ 저는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났습니다.
기억나는 모든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냈죠.
그곳은 사랑받으려 애쓰는 사람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친구도 보았고
입양이 잘 돼서 새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입양이 실패하고 돌아온 보육원에서
원장님과 나누는 사무실 직원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파양을 하게 되면 마치 인사고과 점수처럼
제 앞에 점수가 매겨지더군요.
때문에 두 번째 입양 때는 사랑받기 위해
부단히 애썼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있었던 그늘은 어찌할 수 없더군요.
자식이 없어 절 입양했는데
입양 후 두 해가 지나기 전에
제 양부모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전 뒷전이 되었고요.
가족이 되기 위해 애썼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제게 사랑이 있을 리 만무했죠.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
사랑은 독이었습니다. “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없는데,
그런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전 번번이 사랑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는 실패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패배한 기억이 많으면 좋은 기억 또한
잠식당하기 마련인데 그의 기억은 절망 그 자체였다.
매슬로우의 위계질서 이론에 의해 살펴보더라도
안전의 욕구도 해결이 안 된 상황이었다.
어린 시절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그런 영향이 커 보였지만
지금이라도 원인을 찾고자 하는 그의 내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위험도는 크지만
그래도 방법을 제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수술을 권했다.
“ ㅈ 환자의 경우, 절망적인 기억들이 희망적인 기억들을 다 잠식한 경우라 판단이 됩니다. 이럴 경우 쓰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이식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네. 환자 분의 경우 절망적인 기억들을 가진 해마들을 죽이고 그 자리에 살아남은 좋은 기억들을 증식시키는 방법과 다른 사람의 행복한 기억들을 이식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증식을 시키는 데에 시간이 걸려 입원을 권하지만 다르 사람의 행복한 기억을 이식하는 경우는 입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부작용이 있나요?”
“어느 시술이나 수술이나 부작용은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이식하는 경우
내 기억과 충돌해서 좀 더 강한 기억,
좀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살아남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이식을 계속하게 되더라도
잠식당한 기억은 살릴 방도가 없게 되죠.
위험도가 따르는 수술입니다.
그래도 진행하시겠습니까?”
수술 날도 그는 담담했다.
이 수술을 하는 경우 환자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낙관적인 상황을 그리며 기뻐하는 환자와
좋지 않은 상황까지 고려해서 침울 해 있는 경우.
ㅈ환자의 경우는 좀 달랐다.
기뻐하지도 침울해 있지도 않은,
그저 고요한 상태로 보였다.
절망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건 내 영역은 아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술은 타인의 기억 이식술과
살아남은 좋은 기억들의 배양,
증식시키는 방법 두 가지 모두를 해야 했기에
수술시간이 길어졌다.
총 처럼 생긴 전기 충격파기를 들고
거의 여섯시간 정도 절망적인 기억 해마들을
죽이는 작업을 반복했다.
남은 두시간 동안은 행복했던 기억들을 기증,
보관해 둔 사람들의 기억 해마를
이식하는 시간이었다.
해마는 신경계와 연결이 되어있는데
ㅈ환자의 경우 죽은 해마가 말썽이었다.
이미 절망적인 기억으로 자리한 해마가
이식이 잘 되지 않는상태의 형태로
변형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호르몬 요법을 써서 이식을 하고
좋은 기억들을 배양하는 약물을 썼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의식이 드시나요?”
“으흐흠. 머리가 맑은 기분이에요.”
“수술은 성공적입니다.
하지만 환자분의 경우 이식을 하다가
조금 특이점이 발견이 되어 호르몬 요법을
썼던 터라 경과를 보기 위해
당분간 입원을 권해 드립니다.
약 일주일 정도 지나서 퇴원하시면 됩니다.”
일주일간 그의 병동 생활을 지켜본 결과
스스로에게 관대해졌고
퇴원의 마지막 절차에서 이루어지는 심리검사에서
자기 존중감이 전과 다르게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해의식의 정도가 많이 개선이 되었다.
ㅈ환자는 수술 전과는 다르게
잠에서 깨면 개운한 기분이 든다고 했고
더 이상 불면증이 계속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잠을 잘 잔다고도 이야기했다.
내가 처음 기억 신경정신과에 수련의로 왔을 때
기억 절제술에 저명하다는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이런 돌팔이가 어디 있나 라고 생각 한
적이 있던 터였다.
나라에서도 금지하는 기억을 없애주는 수술이라니.
기억을 없애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기억을 이식한다니.
이 말도 안 되는 곳에 오는 환자들은
기억을 절제하거나 기억을 이식하러 온다라…
이제 이 병원에 온 지 3년 차,
그들의 기억들은 과연 쓸 모 없는 것이었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