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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호정 Jun 22. 2019

'감정'이란 영원한 숙제

<칠드런 액트>를 보고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감정이란 것은 항상 그렇다. 인간이라면 갖고 있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 간지럽기도 아프기도 한 그런 마음 상태. 얼굴 가죽이 만들어낸 표정 뒤에서, 또는 가장 큰소리로 터져 나오는 목소리로, 마음속에 존재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언제나 사람 안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때론 억지로 감정을 억눌러 색채를 잃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며, 어쩔 땐 너무나도 마음껏 뿜어내어 너덜너덜해진 마음만을 짊어진 채 힘겹게 살아가기도 한다. 때문에 우린 감정을 조절할 수도꼭지가 필요하다. 


 사람은 때론 이 감정의 수도꼭지를 단단히 잠글 필요가 있다. 특히, 판사와 같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법에 의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여기 그녀가 있다. '피오나 메이(엠마 톤슨 분)'. 베타랑 판사이며 모두의 존경을 받는다. 누군가의 완벽한 이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그녀의 모습은 위엄이 느껴지는, 한마디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있었다. '잭(스탠리 투치 분)'은 교수이자 그녀의 남편이다. 그 또한 명예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위치에 있었다. 완벽한 부부, 겉으론 그랬다.



 늦은 밤 타자 소리만이 울려댔다. 집이라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는 고립되었다. 그것이 불행한 결혼생활의 복선이 되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때문에 그는 사랑고백을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 이대로라면 바람을 피울 것만 같아." 사랑이란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 사이에 나올 수 있는 최악의 말이었다. 그는 이어서 속이지도 않고 아직 바람피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그의 진실됨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그녀는 언제나 법이란 기준으로 수많은 사건들을 향해 확고한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어떠한 결정도 쉽사리 할 수 없었다. 관계 사이에 법은 없었다. 감정과 대화로 채웠어야 할 그들의 유대는, 그의 대사로 사랑의 과거가 부정당하고 현주소를 상기시켰으며 미래를 지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수많은 단어들이 존재한다. 물론 그 관계가 '연인'이나 '부부'와 같은 한 단어로 규정될 수 있지만, 그 사이 수많은 수식어가 존재하여 처음 정했던 관계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 그들과 같이 '관계가 소원해진 부부'처럼. 잭의 말에 그녀의 눈빛은 흔들렸고,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흔들린 그들의 관계만큼이나 불안정했다. 어쩌면 그녀가 지금까지 지켜온 품위와 권위가 그녀를 최소한의 반항으로 이끌었는지 모른다. 터져 나오기보단, 잔뜩 억압하여 간신히 형용할 수 있는 언어들로 그에게 경고를 할 뿐이었다. 문제는 그 경고가 너무나도 제대로 먹혀, 짐을 챙겨 집을 나서는 잭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래도 어른이었다. 집 안에서 일어난 대사건 후에도 법정 안에서는 익숙하게 자신이 맡은 일처리를 했다. 자리가 높은만큼 책임의 무게도 컸다. 그러다 한 소년을 만났다. '애덤(핀 화이트헤드 분)'은 병에 걸려 수혈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의 이유로 수혈보단 마지막 숨을 내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생명을 잃어가는 눈은 깊은 색을 뗬다. 피오나는 그렇게 소년을 만났다. 소년의 눈에선 동경과 설렘 그리고 환희가 펼쳐졌다. 그녀는 논리적인 설명이나 어쩌면 강요도 가능했겠지만, 그녀의 선택은 소년의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이 영화 속에서 노래는 색을 더한다. 세상을 향한 불평불만을 잔뜩 쏟아낸 뒤 부르는 자장가는 유머러스함을 더하고, 차디찬 병실 속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아름다움을 더한다. 더불어 감성을 극한으로 끌어내는데 음악은 매우 효과 적였다. 극으로 달한 감정은 소년에게 자신의 눈앞에 있는 피오나라는 새로운 믿음을 새겨주었다. 종교에 독실한 믿음을 보였던 소년이, 실체화된 상대로부터 느끼는 감정은 바로 '사랑'이었다. 



서로와 서로의 관계가 얽혀 그렇게 사랑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가 아니다. 애틋함과 설렘보단,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진실된 마음과 투명한 색으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만약 영화에 등장하는 소년을 화자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미완성의 성장기나 실패한 청춘물로 그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화자를 피오나 메이로 삼으면서, 속삭이던 가능성에 대해 빛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극대화한다. 더욱이 어른의 틀 안에서 발생되는 '어른스러운 고민'들이 소년의 순수함에 의해 어떻게 답을 찾아가는가 또한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그렇게 감정이란 것이 단순히 어린아이 때 정립시켜야 할 기본기가 아닌, 어른이 돼서도 감정의 위치를 항상 고민하고 매번 자리를 다잡아야 하는 영원한 숙제라는 것을 영화는 말해준다.


감정은 그렇게 서로를 잇는다. 우리 인간관계가 그렇듯 항상 올곧이 전달되는 것도 아니며, 때론 감정을 전달하던 목소리가 턱 하고 막혀서는 무력하게 한숨으로 새어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단절된 감정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피오나와 잭처럼, 그리고 피오나와 애덤처럼. 애덤의 순수함은 그동안 단단히 잠겨있던 피오나의 감정의 수도꼭지를 풀도록 했다. 위엄과 품위로 가득 찬 베타랑 판사의 모습보단, 인간스러움을 되찾게 된 피오나 메이의 모습에서 영화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렇게 영화는 피오나의 모습을 빌려 우리에게 말해준다. 꼭 잠가버린 감정의 끄트머리를 조금은 풀어줄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드라마 | 영국

2019.07.04 개봉예정

105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리차드 에어

주연 엠마 톰슨, 스탠리 투치, 

 핀화이트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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