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을 보고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청년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 어느 한 사진에 놓인 그의 모습은, 강인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자신의 신념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감을 두려워않는 그런 모습. 그런 그의 이름을 이름을 부르지 못한 이유는 참으로 단순했다. 단지 몰랐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던 것뿐이다. 수십 년 후 그에게 빨간 점이 생겼다. 흑백의 사진이었기에, 빨간 점은 이질감을 주었다. 그것이 쭉 이어져서는, 화살표가 되어 한 곳으로 향했다. 종착지는 어느 북한인. 그렇게 그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제1 광수' 그것이 그의 새 이름이었다.
영화는 붉은 화살표로 얼룩진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가장 단순하고도 쉬운 방법으로 그 사진의 화살표를 지우려 했다. 사진 속 인물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짧게 끝날 수도 있는 여정이었다. 영화도 그러길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 속 희미해진 기억만이 유일한 진실의 증거가 된 지금,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합쳐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시간의 터널을 지나 다시 80년 5월의 광주를 마주했다. 기억과 목소리로 다시 만난 5월의 모습은 간신히 붓을 놀린 수채화처럼 스크린 속에서 점점 번져나갔다.
'광수' 그들은 그렇게 불렸다. 지금까지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 광수라는 이름은 5˙18에 참여했던 북한 특수군을 뜻하는 단어로, 민주화 운동의 본의를 희석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단어이다. 이렇듯 단순히 단어가 존재함으로 인하여, 막연한 불안감을 선명한 공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구 난방으로 광수라는 수식어를 여기저기에 붙였을 것이다. 몸을 불린 공포는 진실에서 시선을 거두게 만들고, 현혹하고 혼동시킨다. 그것만으로 그 단어는 임무를 다한 것이다.
사진을 배경으로 그 위에 그려가는 희끄무레한 기억의 조각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추적극의 형식을 띤다. 인물을 놓고 그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그것은 80년 5월에 있던 기억들이다. 흑백으로 어쩌면 검붉은 색으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은 영웅담이나 추억담도 되지 못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된 대화들은 유쾌할 순 없었다. 안타까움과 슬픔 그 속에 묻어있는 굳은 의지와 피끓는 열정. 서로의 목소리를 모아 하나의 형상을 완성해나가며, 그렇게 그들은 '김군'이라는 이름을 만났다.
'김군' 그는 그날의 누군가처럼, 희망을 좇다 생명을 잃었던 이름 없는 그들처럼. 그렇게 마음속 한구석에 남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완성된 그림은 화려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에너지와 힘을 갖고 있었다. 그 힘은 순수하고도 밝게 빛나는, 우리가 이어나갈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이었다. 그들이 지녔던 신념은 결코, 정치적으로나 아니면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얼룩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멈춰버린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하여 시간을 뚫고 여러 사람의 기억으로 끝이 난다. 영화는 정답을 찾았다기보단,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진실을 외면한 채 야욕의 도구가 되어버린 숭고한 희생이 아직도 누군가에게 의해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여전히 그들의 사진 위에는 수많은 빨간 점이 찍혀있고, 화살표가 되어 거짓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이 지금까지 지켜온 그리고 앞으로 지켜나갈, 잃을 수도 잊을 수도 없는 5월 광주에서 꽃피웠던 그들의 정신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