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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란 Apr 01. 2024

모서리

퇴고 없이 단번에 쓰는 글

유리컵의 표면을 바라보고 있다

수세미로 문질러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기다리다가 씨름하다가

보이지 않게 된 얼룩을

손을 더듬어 찬장 위에 올려두었다


한 번 밖에 입지 않은 옷을 빨 수는 없어

의자 위에 걸쳐두었다 검은 청바지와 빳빳한 롱코트 가끔은 발목양말과 체크셔츠

방의 크기는 줄어들기만 하고 서서 자는 날이 많아지고

슬며시 눈을 뜨면 언제나 세탁기를 돌리기에는 늦은 시각

식탁에 기댄 채 MBTI 검사를 다시 하다 바닥에 우유가 흘러 굳은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계획적이고 철저한 사람은 알아서 움직입니다 독립심이 강합니다 누가 혼내기도 전에


손톱 위로 검은 점이

곰팡이처럼 피어 있다

수많은 시도 끝에

긁어도 옅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아무 관심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만히 있으면 성공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도전


딸은 저쪽 방에 누워 자는데 문은 잠겨 있다

잠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울지 않음을 믿어야 한다

단단한 사람은 자신을 남처럼 돌봅니다

오늘부로 단단함을 선언한다


요구르트는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을 기다린다

암막 커튼은 젖혀지기를 기다린다 해가 뜨면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되고

얼음은 조금씩 녹아 물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진다

장롱은 닫힌 문 너머에 있다

의자 위에 겹겹이 쌓인 옷더미가 방의 한가운데를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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