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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오비피엠 Dec 22. 2020

다이어리 구매기

다른 삶을 살아보기 위한 준비

다이어리를 샀다. 표지는 연보랏빛의 부드러운 가죽으로 되어있고, 속은 하루마다 쓸 수 있도록 되어있어 조금 두툼하다. 딱 모양 봤을 때의 이미지는 조금 길쭉한 성경책같은 느낌이다. 가격은 13,000원. 과연 이 다이어리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속을 알차게 채울 수 있을까. 주인을 잘못 만난 것 같아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다이어리를 잘 쓰는 성격이 아니다. 하나에 몰두하면 다른 일을 자주 잊어버리곤 하는 데다 관심사도 쉽게 휙휙 바뀌는 성격이라, 다이어리 쓰기는 길어야 1월 말까지가 고작이었고 일기 쓰기는 일주일을 넘겨본 적이 없다. 그나마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 서평을 종종 올리곤 하는데, 그것도 1~2주 간격은 기본이요 길면 한 달 이상 못쓰기도 한다. 


그런데도 굳이 다시 다이어리 쓰기에 도전하게 된 건, 시간관리를 좀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보면 종종 2020년을 없었던 걸로 해달라, 올해는 정말 아무것도 못했다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 글을 보면 재밌기도 하고 공감도 가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정말 올해는 어쩔 수 없는 해였을까? 자기소개서를 쓰고, 취업준비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 스스로를 돌아보니 졸업을 하고 이제 곧 1년,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던 것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올해를 보냈다. 코로나 상황이니까, 다들 힘들다니까, 하는 말로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나를 보면서 참 스물여섯살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없었더라도 나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놀기 바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데다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도 아니니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눈에 보이게 만들고, 손으로 써가면서 제대로 감각하지 않으면 스물일곱, 스물여덟도 이렇게 흐지부지 흘러가버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정도면 충분히 잘 놀았으니, 앞으로는 더 열심히 노력을 하면서 사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내 앞에 놓인 작은 다이어리 한 권, 그리고 일기를 쓰는 공간이다. 여기서 하루하루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면서 내 문장도 확인해볼 생각이다. 내 생각을 더 쉽게,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을 꼭꼭 씹어볼 것이다. 또, 제목이나 태그로 어그로도 끌어보고 싶다. 다행히 네이버 블로그만큼이나 통계도 잘 볼 수 있게 되어있는 만큼 실험을 해보기에는 제격인 플랫폼같다. 


문보영 시인의 일기를 한동안 받아본 적이 있다. 아주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아서 재미있었다. 내 하루에서 특별한 것을 찾기 위해, 또 없다면 반성하고 돌아보기 위해 여러 생각들을 적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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