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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Aug 24. 2023

자신의 정체성을 또렷이 인식하는 명징한 시선

쫌 이상한 글방 이야기 3.

직장인들이 앓는다는 월요병. 주부이자 엄마인 나에게 월요일은 어떤 날이더라. 병이라는 말을 아무 데다 갖다 붙이는데 딴지부터 걸고 싶다.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심스러운 말이고, 병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당사자들의 말을 귀담아듣는다면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할 단어이기 때문이다.


중2병.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썼던 말이다. 그러다 어느 중학생의 당찬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왜 나는 아프지도, 어디 잘못되지도 않았는데 중2라는 이유만으로 병자 취급을 당해야 하냐고. 어이쿠, 뜨끔. 부끄러워라.


아이들이 훌쩍 자라고 나도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지는 동안 사춘기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당연하다고 여기던 일에 의문을 품는 것.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생소하고 혼란스럽기 그지없지만 틀을 깨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질풍노도의 시기가 어디 중2 즈음의 사춘기 때뿐이겠는가.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 대체 나는 누군지, 뭘 하며 살고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며 나와 대면했던 시기는 사춘기 못지않게 치열하지 않았던가?


서이승수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또렷이 인식하는 명징한 시선이 느껴지곤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사소한 행위 하나라도 거기에 스민 의미를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는지 묻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을 하든 스스로 품위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반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의 말과 글에 감탄하고 매료된다. 아, 나도 저렇게 말하고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결심하게 된다. ‘손해보험 설계사’ 시험지에 답을 채워 넣는 긴장된 순간에도 ‘신비’라는 단어를 꺼내 쓰시다니!


주어진 50분 동안 50개의 까만 콩알을 정성껏 채워 넣으며 생각한다. 이번 여름이 가져다준 신비는 쉰 개의 쥐눈이 콩을 닮았다고...
...
‘상해사고는 원인, 결과가 예견돼지 않는 우연성을 바탕으로 급격성과 외래성이 그 요건이 되
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이번 설계사시험에 도전한 일은 사고의 요건 세 가지를 두루 갖추며
일어났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게는 이번 시험이 ‘사고’가 아니라 ‘신비’가 되도록 하기 위한
숙제가 고스란히 남겨진 셈이다

월요-병(月曜病)은 ‘한 주(週)가 시작되는 월요일마다 정신적ㆍ육체적 피로나 힘이 없음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혹시나 하고 찾아봤더니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그래도 나는 병이라는 말이 못마땅하다. 왠지 월요일이 억울할 것 같아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이른 아침 ‘지옥철’에 실려 회사로 향하는 직장인들이나 학생들만큼이나 몸도 마음도 힘들게 월요일을 시작하는 주부를 생각해 본다. 나도 주말 내내 식구들 밥을 챙기고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지쳐 월요일 아침이면 몹시 피곤한 상태로 한주를 시작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월요일의 활기, 새 주가 시작되는 설렘. 이번 주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결심, 주말을 기대하는 마음을 다 품고 있는 월요일에게 자신의 이름을 딴 병명이 있다는 건 좀 미안한 일.

나는 월요일 오전, 식구들이 모두 학교나 회사로 향하고 난 뒤 잠시나마 맛보는 홀가분함을 오래 사랑해 왔다, 비록 찰나의 해방감을 뒤로하고 어지러운 식탁을 치우고, 세탁기를 돌리고, 아이들 방을 치우며 한숨 푹푹 쉬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그러다 모든 일을 마치고 믹스 커피 한 잔 들고 소파에 털썩 앉아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틀던 나른하고도 달콤한 월요일 오전 시간에 이름을 붙인다면 뭐라고 할까?


승수 샘의 숙제만큼 유익할 것 같진 않지만 아주 재밌는 숙제인 건 틀림없다. 글방에 가서 함께 이름을 지어보자고 꼬셔 봐야겠다.


#미루글방

#여름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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