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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Aug 23. 2023

고운 조각보 같은 글을 쓰는 사람

쫌 이상한 글방 이야기 2

여름 풍경 조각들을 힘겹게 써 내려가는 은아 씨의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웬만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항상성을 지키는 건 어렵다. 마음이 곤두박칠치는 소식은 도처에 널려 있고, 정신 줄 단단히 쥐고 챙기는 일들이 버거워 다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도 수시로 찾아온다.

무엇보다 성의를 다해 하는 일들이 무의미해 보일 때, 아무리 열심히 한들 무슨 소용일까 싶을 때, 투두둑 가차 없이 마음의 둑이 무너져 내린다.

그런 순간들을 가감 없이 써낸 은아 씨의 글이 요 며칠 지독한 무기력증에 널브러져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 마음 어딘가 무너진 채 방치되었던 마음의 둑에 커다랗고 단단한 벽돌 하나 툭 얹어주는 것 같다. 은아 씨는 써냈구나. 기어코 마침표를 찍었구나. 아, 나도 쓰고 싶다. 나의 조각 여름에 대해.     


“글쓰기가 좌절도 주지만 어쨌든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내가 인간으로서 노력하고 있다는 충족감을 줘요.”  최은영     


-아래는 최은영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난 후 그의 인터뷰집까지 보고 쓴 단상.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난 후, 읽는 사람이기만 했을 때 누리던 즐거움 하나를 잃었다. 이렇게 좋은 글을 나는 쓸 수 없겠지,라는 좌절감, 그저 읽기만 할 때는 좋아하고 감탄하고 감동만 하면 되었는데.

마음을 휘저어 놓은 문장 앞에서, 무엇이든 나도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대지만 쓰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기 일쑤다. 그리고 밀려드는 좌절감.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폐부를 찌르는 단어를 이미 읽어버렸는데, 나는 그저 흉내 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열패감.

그럼에도 작은 노트 하나를 꺼내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 엎드려 쓰느라 노트 밖으로 지우개 가루가 떨어지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 몇 줄 쓰지 않았는데도 어찌나 많이 고쳐 썼는지 지저분해진 첫 장 마지막 문장을 여기로 옮겨 놓는다.   

  

‘그럼에도 지우개 가루를 쌓으며 이렇게 썼다. 나에게도 찾아왔으면 하는 충족감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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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글방] 마지막 과제가 속속 도착해 읽기 시작했는데 피드백보다 중요한 무언가를 해 드리고 싶었다. 글에 감화되어 쓰는 답신 겉은 글을 썼다.

쓰는 내내 1년에서 2년 가까이 글방에 참여해 2주마다 꼬박꼬박 글을 써내는 이들을 얼마나 아끼고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글방을 운영하며 가슴 벅차고 눈물겨웠던 순간들이 많았다. 너무 소중한 기억들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이제라도 부지런히 글방 이야기를 써야겠다.


글을 보고 나서 한 선생님이 그러셨다.

" 이미 우리들 보며 최은영 작가보다도 훨씬 큰 충족감을 느끼지 않으세요?"


아. 정말 그랬다. 나는 이미 글방 식구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 글에서는 느끼지 못한 그 충족감을 너무나 많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의 노력, 우리의 애씀.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고 귀하다는 것을 얼마나 많이 고백했던가.

글을 읽다 보면 활자보다 마음이 먼저 읽힌다. 널브러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힘겹게 이어가더니 곱고 포근한 조각이불 같은 글을 써낸  쫌 이상한 능력을 지닌 사람. 잠시 그 이불 덮고 글 쓰는 동안 참 포근하고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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