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시인 댁에서의 아주 특별한 시 수업
김용만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시인 김용만 선생님 댁에 두 번이나 다녀온 건 내 인생에 길이 남을 일 중 하나다.
'아름다운 것들은 땅에 있다'는 시구가 시인의 집 곳곳에서 힘차게 솟구치는 것 같았다. 직접 쌓아 올리신 돌담, 집터를 그대로 살려 만든 텃밭을 보며
김용만 선생님의 시는 허공에 닿아 있지 않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마당에는 채반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들이 꽃처럼 어여쁘고, 고양이, 새 등의 조각품들이 곳곳에 정겹게 놓여 있었다. 가지도 주렁주렁 능소화는 활짝. 심지어 유리컵과 접시들이 햇빛 소독을 받는 풍경까지 아름다웠다. 개수대 거름망까지 햇빛에 반짝이는 풍경이라니.
거실 창은 액자처럼 창밖 봉숭아꽃과 채송화와 천일홍을 그림처럼 품고 있었다. 작은 돌들을 아기자기하게 장식하고 창안 눈높이에 맞춰 씨를 뿌리고 꽃을 심는 모습이 시를 심으셨구나 싶었다. 그러니 그 창을 바라보며 둘러앉은 우리들은 시적인 풍경에 감탄할 뿐이고.
각자 시집을 품에 안고 자리에 앉았다. 시인을 직접 뵙고 다과를 대접받는 상황이 그저 황송해 어쩔 줄 몰랐다. 용기를 내어 시 한 편씩을 낭독하기로 했다. 나올 땐 다들 눈가가 붉어졌다. 깊고 진한 시와 인생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삶으로 쓰인 시는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해물부침개를 곁들인 주꾸미 볶음은 얼마나 맛있었는지. 선생님 덕분에 오스갤러리의 프라이빗 공간에 둘러앉아 첼로 연주를 듣는 시간은 또 얼마나 특별했는지. 들려주시는 이야기 모두를 받아 적고 싶었고 마음에 새기고 싶었다.
30년 용접일을 하면서 품고 있던 시. 아픈 몸으로 소양에 내려와 매일 노동하며 쓴 시. 그러니 '시인들이며// 호박순 하나 /걸 수 없는//허공을 파지 말라// 땅을 파라'
라는 시 앞에서 매번 부끄럽다.
매일 애매한 허공만 파는 글을 쓰고 있진 않은가 돌아보게 된다.
내가 고른 시를 낭독한 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요. 맞아요. 정성껏 하면 돼요.'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삼켰다. 선생님의 이 시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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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 산이 좋다
긴 장마와 폭우로
책상에 앉는다
오늘도 책은 건성이고
촉촉한 앞산 따라 젖는다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저 산 아래
정성을 다해 살았듯
내 시도
저 큰 산 하나를
가슴 깊이 앉히는 일이다
안개 피어오르고
산새 몇 마리 찾아오면
작은 강 하나
내는 일이다
김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