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그리고 가정』_ 제주여민회 '연결북클럽'
모임명: 연결북클럽
모임기간: 24. 5. 9. ~ 7. 11.
모임장소: 제주여민회 사무실
참여자: 진행자 + 7명
도서명: 커리어 그리고 가정
지은이: 클라우디아 골딘
옮긴이: 김승진
출판사: 생각의힘
발행연도: 2023년
분량: 487쪽
책을 읽다 보면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하는 책, 그리고 실제로 읽은 책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게 된다. 읽고 싶은 책이 어느새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어 언제나 쫓기는 기분이 든다.『커리어 그리고 가정(클라우디아 골딘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2023)』도 책장에 꽂아 두었지만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뒤로 미뤄두고만 있었던 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여민회 '연결북클럽'에서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는 공지를 접했다. 드디어 책을 읽을 기회가 왔음을 직감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신청했다. 모임은 5주 동안 격주로 진행되었는데, 한 번 모일 때마다 2개의 챕터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방식이다. 2시간 30분이라는 모임 시간 중에 처음 1시간은 같이 둘러앉아 해당 부분을 읽는다. 이 방식이 조금 낯설었지만 현장에서 바로 책을 읽고 토론에 참여하면 되니 부담이 없어 좋았다. (대신 주어진 시간 내에 분량을 다 읽지 못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지난 한 세기(1900~2000) 간의 미국 대졸 여성들이 가정을 꾸리고 커리어를 유지해 온 형태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대략 20년을 단위로 모두 5개의 집단으로 나눈 뒤 시기별로 여성들이 어떠한 선택을 해왔는지를 살펴보면, 여성들이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서 어느 한쪽은 또는 둘 다를 선택하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 비단 개인의 선택이기보다 사회 시스템에 따라 변화됨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연구의 출발점은 "대체, 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라는 의문이다. 바로 떠오르는 답은 '성차별'이지만 저자는 이러한 빠른 결론을 계속 경계한다. 성차별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 문제를 너무 단순화하게 된다. 그는 이것을 노동 시간에 대한 문제로 생각을 확장시킨다.
#. 온콜
이 책을 관통하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면 '온콜(on-call)'이다. 고소득 전문직을 포함해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언제든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온콜' 상태의 직원을 선호한다. 부부가 된 남녀가 각자의 일터에서 이러한 '온콜' 상태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직장 외에 돌봄 노동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다. 부부 둘 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 균형을 맞추기에 수월하겠지만 그러면 가정 전체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효율성 차원에서 어느 한쪽이 돌봄 노동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 한쪽은 거의 '여성'이다. 이러한 결정들이 남녀의 임금 격차를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에 매우 공감한다.
#. 공평성
"가정에서 부부간 공평성이 버려지면 일터에서 성평등도 버려진다." 한 참여자가 인상적이었다고 꼽은 문장이다. 나 역시 밑줄을 그었다. 우리는 여태 공평성의 대가를 치르려 하기보다 효율성만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온 것은 아닐까? 우리 부부를 포함해 요즘은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윗세대들은 이러한 현상을 보며 "너무 나약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저자의 또 다른 문장에서 나는 공평성만이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포기하는 돈으로 부부간 공평성을 사는 셈이다." 그렇다. 우리는 돈을 포기하고 공평성을 얻었다.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으므로.
#.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남자"의 의미
저자가 가르쳤던 한 학생은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남자"를 만나겠다는 말을 한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여성이 가정을 이루고 자신이 원하는 커리어를 가지고자 할 때 그것을 응원하고 지지해 줄 남자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북클럽 (은영) 진행자는 책을 다 읽고 난 뒤 이 말에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성들 역시 이제는 효율성의 원칙에 따라 커리어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보다, 가정과 커리어의 균형을 맞추는 삶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호, 그렇게 해석이 가능하구나! 이러한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요즘 아빠가 되는 20~30대 남성들은 직장 이상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단지 아내와의 공평성을 유지하려는 의무를 다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충만한 삶을 위한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성들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이 동일한 질문을 해 왔다. 그들은 답을 찾아 나가면서 장벽을 부수었고 기회를 넓혔고 격차를 줄였고 다음 세대에 교훈을 넘겨주었다. 여성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에서 이상적인 균형을 달성하려면, 변화가 필요한 것은 여성이나 가정만이 아니다. 앞으로 갈 길의 토대를 다시 깔려면 노동과 돌봄의 시스템 자체가 재사고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다. (p.358)
책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서 인생 전체가 혼란스럽기만 했던 나의 개인사가 나만의 문제가 아닌 긴 역사 안에서 보이는 하나의 사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 이전 세대가 노력해 왔듯이 나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꾸준히 해 나가면 된다는 긴 호흡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번 북클럽은 공교롭게도 구성원 8명 중 기혼 4명, 미혼 4명이었는데, 기혼 분들과는 육아를 감내해 낸 부분들을 공유할 수 있었고 미혼 참여자들의 생각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 동시에 분명 사회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모든 독서모임이 그렇지만, 이번 연결 북클럽은 사회에서 내가 어느 위치에 서 있으며 위아래 세대 사이에서 어떤 연결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