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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씨 Oct 17. 2019

일본여행 매니아(?)의 변명

지방공항, 지방 여행자를 위한 변명  

 "엠마씨, 요즘 일본 여행 안 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요즘 인사처럼 듣는 질문이다. 그도 그럴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회사에서도 "일본여행을 가려면 엠마와 상담하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일본여행 매니아로 통한다. 그러니 다들 인사처럼 묻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여권을 펼쳐보면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정말 매 페이지가 빼곡하게 일본 출입국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니까. 여행이기도 하고, 덕질이기도 하고, 도피이기도 하고, 출장이기도 하고, 하여간 그랬다. 1년에 3,4번은 기본,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가지말라는 곳 빼놓고는 이곳저곳 잘도 쑤시고 다녔다. 써놓고나니 좀 쓴 웃음이 나지만. 


 원래부터 이렇게 잘 다녔냐고 하면 그런 건 아니다. 아직 20대일 땐 연봉도 그랬고, 눈치도 그랬고, 내가 사는 지역에서 어딜 간다는 거 자체가 별로 상상이 안 가던 시기였다. 그때만 해도 내 머리에 김해공항의 존재는 '아, 거기 공항이 있었지' 정도였으니(김해공항이 가깝지도 않다). 저가항공이 지금처럼 활성화된 때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나는 영어 밖에 할 줄 몰랐다(!) 책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시작했으니 일본어로 된 글은 읽는데, 공부는 안해서 회화는 못하는 반쪽짜리 언어 실력이었다. 


 일본어를 조금이나마 떠들 수 있게 되고, 노하우가 쌓이고, 연봉도 조금은 올라가고, 회사 눈치도 좀 덜 보게 되는 시기, 나는 30대를 맞이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많은 사람이 그렇듯, 미래를 걱정하고, 이대로 살아도 될지 고민했다. 특히 나는 이 때 서울로 다시 돌아갈지, 이 직장에 남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망설이던 때였다. 처음부터 평생 살 각오로 내려온 것도 아니고, 당시 신분도 '중규직(정년을 보장받은 계약직)'으로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 더 성실하고 악착같았다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나태할 땐 한없이 나태해지는 나는, 해법은 찾지 않은 채 도망만 다녔다. 내게 있어 도망은 여행이었다. 몸 자체를 현실에서 빼내서 또 다른 세상 속에 던져버리면, 짧은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장 새로운 뭔가를 보고, 길도 잃고 버벅거리면서, 스스로를 그냥 좀 놓아두는 것이다. 물론 돌아오면 가차없는 카드값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런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저가항공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아시아나는 에어부산을 내놨고, 진에어나 제주항공도 속속 지방 공항으로 손을 뻗쳤다. 그리고 가장 많은 항로가 개설된 것은 일본 항로였다. 


 원래 나는 패키지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혼자 이것저것 돌아보고, 어떤 여행지에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해서 혼여에 최적화된 여행자다. 심지어 그래놓고 어느 일정은 체력의 한계란 무엇인가를 시험이라도 하듯 빡빡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비행기는 저렴하게 끊을 수 있고, 언어가 통하며, 대충 봐도 견적이 서는 일본이 자주 손에 잡혔다. 앞에서 말했듯 여행이라기보다는 도피였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기 보다는 현실과 닮았지만 현실이 아닌, 굳이 따지자면 '가상현실'이 필요했던 탓이다. 게다가 일정을 짜기 위해 골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엄청난 베네핏이었다. 나는 늘 정신이 없고 바쁜데, 일정을 짜려고 머리를 쥐어뜯는 건 맞지 않으니까. (더 웃긴 건 나중에 스페인 갈 때 딱 이 마인드로 갔다는 거.) 


 일본의 강점은 "가깝다"였다. 지방 거주자들은 공항 접근성부터 이미 탈락이다. 공항을 한 번 가려면 1~2시간은 기본이다. 국제공항은 2시간전까지 가야 하니까, 그 시간까지 도합하면, 왕복에 드는 시간은 훨씬 더 길어진다. 서울처럼 시간대가 다양한 게 아니니까 1-2시간 이상은 더 소요될 수 밖에 없다. 혹시 인천공항을 가려면 상황은 더 우울해지고. 공항접근성이 심하게 떨어지다보니, 비행시간이 짧은 편이 훨씬 활용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직장인이면 기껏해야 주말끼워 하루 이틀이니. 


 김해에서 그만큼 가까운 지역이 없느냐면, 있다. 중국 상하이.


2017년 상하이 신천지 ⓒ엠마

 

  인천-상하이 보다, 아마 김해-상하이가 10~20분 정도 덜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비자. 중국비자 내는 것도 귀찮고, 비행기표가 싸도 비자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그냥 더 싸고 편한 지역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래 전에 상하이 갔을 때 좀 안좋은 기억도 있었고. (물론 지금은 상하이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공중위생은............)


 그래서 쉽게, 한국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가듯 일본을 다녔다. 미리  말해두지만 국내 여행은 안다니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전국 야구장 중 안가본 야구장이 광주 챔피언스필드 하나다(...) 대구나 부산은 네비 없이 다닐 수 있는 곳이 있기도 하고. 제주도도 1년에 한 번은 꼭 가고. 코레일에 매년 붓는 돈이 대략 2~4백만원 사이라고 하면 좀 면죄부가 생기려나.  

 

 내 경우는 그렇다 치지만, 사실 일본만큼 여행난이도가 낮은 국가가 없기도 하다. 처음 해외 여행을 나가는 사람이라면, 치안이라든지 길찾기, 위생, 대중교통, 쇼핑, 먹거리에 많은 관심을 쏟기 마련인데 언어가 원활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한국어와 바디랭귀지가 전부라면 이것도 쉽지 않다. 

 먹거리는 이슈가 있으니 빼더라도 위생이나 대중교통, 길찾기, 치안 면에서는 한국과 같은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국가는 사실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홍콩이나 타이페이도 물론 좋은 곳이지만 약간의 미묘함이 있다. 타이페이는 향신료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극악의 난이도일 수도 있으니까. 

 (가본 나라 중 이런 곳을 찾으라면 네덜란드나 노르웨이 정도겠지만, 비행기는 둘째치고 노르웨이 물가는...)


 여기에 가성비가 붙는다. 최근 몇년사이 한국 물가가 크게 뛰면서, 교통비를 제외하고는 한국여행보다 일본여행이 훨씬 저렴한 상황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제주도 2박 3일이 일본 2박 3일보다 비용이 더 들었으니. '같은 돈이면 외국 한 번 나가봐야지!'하는 심리도 부정하긴 어렵겠다. 그걸 무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다른 세계를 접하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니까.  


 지방 거주자가 초보여행자라는 공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여행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걸 감안하면, 일본이 그나마 도전해볼만한 여행지인 건 아닐지. 실제로도 내가 상담해드렸던 분들은 그런 이유들이었기도 하고. 


 일본 불매 운동이 확산되면서, 일본여행을 다녔던 사람들을 비웃는 글이나, 대구-사가 같은 희한한 항로(사가는 시골이긴 하지만 우레시노나 타케오 온천과 가깝다)를 왜 개설했냐는 글을 자주 보긴 했는데, 기업의 사정은 둘째치더라도, 지방에서 해외 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본은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여행지라는 이야기는 해두고 싶었다. 어떤 대단한 이유보다도, 한 번 쯤 해외여행을 해보고 싶었다거나, 상황은 좀 여의치 않지만 가보고 싶었다거나 하는. 


 그렇다고 일본여행을 장려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다른 지역도 많은데 굳이 왜. 꼭 보지 않으면 안될 게 있다면 모를까. 어쨌거나, 개개인의 삶에 대해 그냥 말하는 건 쉽지만, 지방 거주자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서울에선 전혀 생각도 못할 불편함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도 알 필요가 있고.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되는 거니까. 


 아참,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최근들어 일본 여행은 안 갔다기 보단 못 갔다. 불매운동 이후 휴가를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갈 이유도 없었고.  

 못다한 여름휴가는 느긋하게 쉬고 싶다고 외치며 태국으로 이제야 가게 됐다. 휴가가 남아도 너무 남아서 다 털어냈더니 꽤 먼 곳까지 가게 됐는데, 통장잔고도 같이 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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