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지 못해도 "나이스~!"

밥 대신 노래 : 점심시간에 노래 배우기

by 귤예지

보컬 선생님에 대해 말하자면, 첫인상이 딱 연예인이었다.

뽀얗고 맑은 피부에 센스 있는 패션 감각까지.

무엇보다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유리구슬처럼 영롱하면서도 단단했다.

선생님은 분명 노래를 아주 잘하실 거다. 제대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한두 음절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진다. 게다가 선생님의 프로필에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화려한 이력이 줄줄 적혀 있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은 사람의 몸을 '악기'에 비유하셨다. 기타를 연주할 땐 기타가 악기지만, 노래에서는 사람의 몸이 바로 악기라고. 노래를 잘하려면 몸부터 잘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몇 번의 수업을 듣고 나니 그 말이 가진 또 다른 의미를 알 것 같다.

기타라고 다 같은 기타가 아니듯 몸도 다 같은 악기가 아니다. 선생님이 최고급 소재로 장인이 만든 명품 기타라면, 나는 비슷한 모양과 소리만 흉내 내는 보급형 기타쯤 될까?


오늘은 이 보급형 악기를 조율하는 법을 배웠다.

'퍼, 터, 커'.

입술과 혀, 성대 근육을 풀어주는 훈련이다.

'퍼퍼퍼', '터터터', '커커커'를 천천히 발음하다가, 점차 속도를 높였다.

이건 진짜 쉬운데, 싶어 모처럼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어서 립트릴(Lip Trill).

"부르르르르르르~"

입술을 떨며 긴장을 푸는 훈련이다.

처음에는 쉽게 성공했지만, 선생님의 지시대로 음정을 넣었더니 소리가 툭 끊겼다. 절반의 성공.

그래도 선생님은 엄지를 들며 칭찬해 주셨다.

"나이스~!"


다음은 혀트릴(Tongue Trill), 혀의 긴장을 푸는 방법이다.

"르, 르, 르, 르..." 대실패다.

"혀의 힘을 풀고 입천장에 닿을 듯 말 듯 둔 채로 해보세요. 르르르르르르~"

아무리 해도 내 소리는 '르, 르, 르' 하고 툭툭 끊긴다.

"혀가 너무 두꺼워서 그런 건 아닐까요?"

내가 묻자 선생님이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럴 수 있어요. 혀 앞쪽을 살짝 손으로 잡고 해 보세요. 아, 지금 말고 집에 가서요!"

선생님의 당황한 얼굴에 꺼냈던 혀를 얼른 집어넣었다.


마지막은 돼지소리. 성대를 훈련하는 방법이다.

성대도 나이가 들었나, 장난 삼아 쉽게 내던 소린데 오랜만에 하려니 잘 안된다.

'흐그그' 소리를 내다 결국 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같이 배우는 J와는 이제 더 숨길 것도 없다.

어쩌다 한번 성공하자, 선생님이 기다렸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쳐주셨다.

"나이스~!"

이 짧은 감탄사에도 묻어나는 '유리구슬' 목소리. 갑자기 또 겸손해진다.


이렇게 다양한 훈련으로 입 주변 근육을 풀면 발음이 부드러워지고 다양한 부위(?)에서 나오는 소리가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한다.

아니, 소리가 다 같은 데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고?

40년 동안 소리를 내면서도 몰랐던 사실이다.


문득 선생님께 짠한 마음이 들었다.

노래를 못 부른 적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른 적이 없는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 본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배우지 않고도 가능했던 것들을, 너무나 당연히 모르는 우리에게 일일이 알려주고 계시다.

누구를 가르치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걸 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몸소 느끼고 있다.

내게는 당연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들. 두 발로 걷는 법부터, 울거나 던지는 대신 말로 표현하는 법까지. 내게는 몸에 붙어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아이와 함께 할 때면 아이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내 속도대로 살아갈 때보다 두 배의 에너지와 그 이상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 어려운 일을, 우리 선생님이 하고 계시다.

화도 안 내고, 인상도 안 쓰고, 그저 웃으며 "나이스~!"를 외치는 선생님.

목소리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유리구슬인 게 틀림없다.

그래서 그 마음에 든 유리구슬이 목소리로 나오는 걸까.


아무튼 우린 아직 갈 길이 멀고, 선생님은 당분간 이 40대 아줌마 제자들을 더 견뎌주셔야 하지 싶다.

그래도 하나 위로를 드리자면, 일이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 아닐까요. 노래를 못 하니 선생님을 찾아왔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만났잖아요.


반면 내게는 노래가 직업이 아니라 취미라는 게 위로다.

잘하지 못해도 "나이스~!"를 외쳐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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