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가 없는 방에 갇힌 것처럼 막막한 순간이 있지. 엄마에게 가장 막막했던 순간은 취업준비를 하던 때야.
지방의 소도시에서 대학을 다닌 엄마는 서울에 있는 한 회사의 인턴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어. 근무성적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수도 있는 자리였지. 고시원비와 밥값, 교통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월급이었지만, 정규직 전환이 간절했던 엄마는 누가 시키지 않는 일도 나서서 할 정도로 열심이었어. 하지만 두 달간의 인턴기간이 지나고 엄마는 아쉽게도 정규직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단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 이미 필요한 수업은 모두 들었기 때문에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었거든. 그렇다고 고향집으로 갈 수도 없었어. 회사도 많고 정보도 많은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취업으로부터도 같이 멀어질 것 같은조바심이 들었거든.
결국 엄마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 남기로 했어. 먼저 기약 없는 구직기간 동안 지낼 방을 구하려고 이 동네 저 동네를 헤매기 시작했지. 손바닥 만한 창문 하나에 5만 원. 변기 딸린 욕실 하나에 10만 원. 가격이 괜찮아서 찾아갔다가 햇빛 한줄기 들지 않는 방 상태에 실망해 돌아 나오고, 방 상태가 좋아 보여 찾아갔다가 가격을 듣고 돌아 나오기를 반복했어.
그러다 우연히 입주과외교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 식사와 숙박을 제공받는 대신 과외를 해주면 된다는 거야.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엄마에게는 정말이지 꿈같은 조건이었어. 바로 짐을 챙겨 그 집으로 들어갔지. 그 집에는 과외학생인 수진이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과 수진이 동생들까지 총 일곱 명이 살았어. 엄마는 수진이와 함께 지내며 낮에는 입사원서를 쓰거나 인근 대학생들과 취업스터디 모임을 가지고 밤에는 과외를 했어.
취업사이트에 올라오는 채용공고는 빠짐없이 챙겨보고 거의 매일 새로운 회사에 원서를 내다시피 했지만 첫 번째 관문인 서류통과조차 쉽지 않았어. 겨우 서류전형에서 통과해도 면접에서 허무하게 미끄러지기 일쑤였지.
열심히 준비한 면접에서 떨어지고 몇 주에 걸쳐 낸 입사원서가 모두 탈락하는 바람에 더 기다리는 결과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날에는 피로와 절망감, 두려움까지 얹힌 두발이 무거워 겨우 한걸음을 내딛는 것도 버거웠단다.
노력에는 늘 결과가 따른다고 믿고 살아온 엄마에게는 결과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막막했어.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건 끝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막막한 상황만큼이나 엄마를 힘들게 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외로움이었어.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든든한 지붕 역할을 해주었던 학교로부터 독립한 직후였잖아. 진로에 대한 고민과 결정,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혼자서 떠안은 채 공터로 내던져진 기분이었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엄마 스스로를 더 고립시킨 것 같아. 세상 누구보다 엄마를 아끼고 위하는 부모님의 관심조차 그때는 버겁더라. 명절에는 구직활동이 어떻게 되어가냐는 친척들의 질문을 듣기 싫어서 고향집에 내려가지도 않았어. 학교에서 후배들이 근황을 물어오는 것도 불편했지. 걱정하고 응원하는 말들을 호기심을 채우려는 말들로 오해하기도 했어.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나 매일 만나는 스터디원들 중 누군가가 취업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앞에서는 기쁘게 축하해주면서도 돌아서면 마음 한편이 시렸단다. 그렇게 엄마는 스스로를 더 좁은 골목으로 몰아넣고만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엄마가 처음으로 최종면접을 보게 된 날이야. 마지막 관문까지 왔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어 전날 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
날이 밝자마자 집을 나서려는데 식탁 위 반짝이는 무언가가 엄마의 발길을 잡았어. 은박지에 곱게 싼 김밥이었어. '선생님, 면접 잘 보세요'라고 적힌 쪽지와 만 원짜리도 함께. 늘 엄마 몫의 아침도 준비해주시는 아주머니께 그날 아침은 함께 먹지 못한다는 말씀을 드려두었는데, 빈속에 면접을 보게 될 것이 걱정되셨나 봐. 만 원짜리는 날 위해 두신 걸 뻔히 알고도 덥석 집어 들기가 죄송해서 머뭇거리는데 아주머니께서 다가오시더니 가방 속에 구겨 넣듯 넣어주셨어.
그날 저녁 돌아오니 온 가족이 엄마를 둘러싸고 면접은 어땠는지, 회사는 괜찮았는지 물어보셨어. 거기서 만든 제품이 무엇이고 어디에 좋다더라는 말까지 오가는 걸 보니 엄마의 면접에 모두들 관심이 많으셨던 모양이야. 좋은 회사니 분명 좋은 사람을 알아볼 거라고, 그러니 분명 합격할 거라고, 혹시라도 떨어지면 좋은 회사가 아닌 거라고, 그럼 계속 같이 살면서 아이들 공부 도와주면 안 되냐고 웃으며 하시는 말씀에 한동안 얼어 지내던 엄마는 그만 웃고 말았어.
과외선생님으로 들어와 취업준비에만 치중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너무 애쓰는 티를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알고 계셨던 거야. 탈락 통보를 받을 때마다 풀이 죽은 엄마 모습을 못 본 척 눈감아주고 계셨지만 속으로는 모두 응원하고 계셨던 거야. 내내 혼자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엄마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 있었던 거야.
그해 겨울, 엄마는 마침내 원하던 회사에 합격했어.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막막한 구직활동이 끝난 거지. 힘들었던 순간 엄마에게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셨던 수진이네 가족들은 합격소식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어. 직장에 다니면서도 계속 수진이와 함께 지내도 된다는 말씀도 해주셨단다. 따로 방을 구하지 말고 그 돈 모아 시집갈 때 쓰라는 말씀을 수진이 아버지께서 하실 때는 마치 서울에 삼촌이 한 분 더 생긴 기분이었단다.
우리는 크고 작은 문제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며 살아.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일도 막상 그 가운데 있으면 더없이 막막하지. 다들 잘 지내는데 나만 힘든 것 같고, 다들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것 같은 순간도 분명 있을 거야. 누구에게든 기대고 싶지만 내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 내 편에 서 줄 사람은 도무지 없는 것 같아 외로워지는 순간도.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단다.꼭 내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 않아도 네가 옳은 길에 있기만 하다면 언제든 지지를 보내줄 준비가 된 사람들이. 그럴싸한 말을 나서서 해주지는 않더라도 언제든 손 내밀면 네 편이 되어줄 사람들이분명 가까이 있을 거야.
우리가 우리의 문제들을 낱낱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듯이 누군가는 괜히 어설픈 위로를 하게 될까 주저하며 마음으로 응원과 기도를 보태고 있을지몰라. 그러니 혼자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좁은 골목으로 몰아넣지는 말자.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너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단다. 많은 사람들이 네게 부어준 그 사랑은 네가 힘든 시기를 지날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연료가 되어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