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달 Jan 03. 2020

넷플릭스 ‘위쳐’

기대한 것보다 괜찮은데?

드디어 다 봤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위쳐: 이성의 목소리’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 책의 내용이 시즌 1 내용의 기본 뼈대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것도 있는데, 직접 비교하며 보시는 걸 권한다. 디테일 설명하는 게 오래 걸릴 것 같다.


http://eggtail.net/thewitcher/


드라마 전체적으로 돈 들인 티는 분명히 나지만 그게 충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헨리 카빌 출연료에 예산 절반이 들어간 거 아니냐는데, 몇몇 CG에선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블록버스터 영화와 드라마는 예산부터 차이가 엄청나니, 1억 달러짜리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올 만한 CG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CG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다. <위쳐> 시즌 1은 처음엔 꽤 혼란하지만, 뒤로 갈수록 정리가 되면서 큰 그림을 완성한다. 게롤트, 예니퍼, 시릴라의 여정이 각자 다른 타임라인으로 시작해 8화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로 합쳐진다는 점에선 <덩케르크>의 잔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제작자 로렌 슈미트 히스릭 또한 타임라인 설정이 <덩케르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게롤트의 이야기는 <이성의 목소리> 속 그의 모험담을 나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서(무조건은 아니다), ‘위쳐’이면서도 다른 위쳐와는 다른 ‘리비아의 게롤트’라는 캐릭터를 구축한다. 정의와 이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인간의 비합리적 의심과 공포를 비웃고,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잔정이 많고, 말은 별로 없는데 드라이한 유머 감각은 있고, 모아놓으면 주인공으로는 꽤 좋은 캐릭터다 싶다. 이런 주인공을 쓰는 건 작가의 숙원이고,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배우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그게 작품에서 잘 보인다.


예니퍼의 이야기는 계부에게 구박받는 꼽추 소녀가 마법학교 아레투자의 우등생이 되고, 뼈를 깎는 고통을 겪은 후 미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완전한 마녀로 거듭난 예니퍼는 왕국의 조언자가 되고, 강력한 힘을 가진 마녀로서 자신이 염원하는 유일한 것을 찾아 헤맨다. 대강 이렇게 배치하면 시간 순서겠거니 하는 게롤트와 달리 예니퍼의 이야기는 매우 친절하게 즐길 수 있는 성장담이다. 힘과 야망으로 똘똘 뭉친 예니퍼가 마법과 마법사를 지키는 영웅이 되는 이야기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다.


시릴라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할머니 칼란테 여왕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란 신트라의 시릴라 공주가 위쳐 세계의 운명을 지닌 열쇠가 되려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그저 순진했던 공주는 닐프가드의 추격을 피해 여러 곳을 떠돌며 강해지는 법을 배운다. 시릴라가 그저 순진한 상태로 게롤트를 만났다면 얼마 가지 못해 둘 다닐프가드의 군대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다. 짧고, 생각보다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아 아쉽지만, 시릴라의 성장담은 마지막을 위해 필요한 요소였다. 특이하게도, 시릴라의 출생담은 게롤트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한다.


헨리 카빌에 대해 더 말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본인 몫을 잘 했다. 그레이트는 아니지만 굿이란 뜻이다. 피지컬이야 당연히 합격점. 몸이 단단한 게 옷을 입어도 느껴질 정도였다. 게임 팬인 만큼 캐릭터에 애정이 있고, 그걸 연기로 풀 때 꽤 고민을 한 것 같더라. 카빌이 <맨 오브 스틸>이나 <배트맨 V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저스티스 리그>로만 연기를 평가받는 건 무리가 있다. 물론 피지컬과 외모가 가장 먼저 들어오지만 <맨 프럼 엉클>에서 뭔가 “연기!”라는 걸 할 수 있을 때 썩 나쁘지 않았다. 아무튼 게롤트는 괜찮았다. 다른 배우가 너무 잘해서 그렇지.


처음 예니퍼의 캐릭터 포스터나 영상을 봤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안야 찰로트라가 캐스팅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게롤트보다는 덜 알려진 예니퍼에게 더 집중해서 보게 할 만큼 매력도 있고 연기도 정말 잘 한다. 안야 찰로트라보다 더 예쁘거나 피지컬이 돋보이는 배우도 많았겠지. 하지만 꼽추일 때도, 미녀일 때도 눈빛이 '형형하다'라는 게 느껴졌다. 다들 헨리 카빌이나 게임 때문에 <위쳐>를 시작해도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보고 나면 예니퍼나 안야 찰로트라 이야기만 할 것 같다.


시릴라는 두 사람에 비해서 뭔갈 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제몫을 다 한다. 굉장히 말갛게 생긴 소녀가 죽음에의 공포를 겪으며 단단해지는 게 잘 보이더라. 시즌 2에선 더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위쳐>는 분명히 게롤트가 주인공인 검과 마법 판타지 드라마이지만, 다 보고 나면 여성 캐릭터가 굉장히 돋보인다. 게롤트의 과거, 현재,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등장 시간은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신트라의 암사자' 칼란테 여왕은 해외 매체나 트위터에서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칼란테를 연기한 조디 메이는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베테랑 배우다.) 아레투자 마법학교 원장인 티사이아도 엄격하고 냉혹하지만 예니퍼를 누구보다 아끼는 스승이란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시즌 2가 내년쯤 나올 텐데, 그땐 시즌 1보다 더 집중해서 볼 것 같다. 게롤트, 예니퍼, 시릴라 세 사람이 만난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전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마법사들의 연합도 찢어지고, 삶과 사고방식이 충돌하는 현장이 어떻게 그려질지도 기대된다. 각본이 제발 잘 나오길 바란다.


https://www.netflix.com/title/80189685?s=i&trkid=1374722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