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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맠크나 Dec 12. 2020

어쩐지 X된 것 같습니다만 (1부)

퇴사 후 유학 다녀온 밀레니얼의 한탄

어쩐지 X된 것 같습니다만


집구석에서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생각해본다. 지난달 쓴 공채 지원서는 모두 서류 불합격이 됐다. 영국 석사 졸업예정자, 경력 2년, 인턴 3번, 영어, 중국어,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까지 갖췄는데, 신입사원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처지다. 아무래도 신입사원 하기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분명 올해 영국에서 만 30살 생일파티를 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곧 32살이 된단다. 난 아무래도… X된 것 같다.


유학생 시절에는 참 대차게 팬데믹 시대의 혐오와 연대를 논하고, 미래 학교 교육의 변화를 촉구하는 글을 썼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오니 당장 밥벌이를 걱정하는 암울한 처지에 한없이 작아진 나는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30대 실업 청년의 참담한 고백에도 딴지 편집자는 눈치 없이 신이 났다.

넌 참 진짜 X된 것 같구나. ‘망했다’나 ‘큰일 났다’ 같은 그 어떤 다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너의 ‘X됨’의 기승전결을 담아 연재를 시작해보렴. 웃지도 울지도 못할 그의 제안에 그저 깊은 한숨을 나올 뿐이다.
<출처 - Wikipedia>

2000년생 뉴질랜드 소녀 베니(BENEE)의 노래 ‘Supalonely’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신이 나는 템포에 그렇지 못한 가사로 “난 망했어, 난 루저야 (I know I fucked up, I’m just a loser).”를 외치는 이 노래를 요즘 듣고 있자면 현실에 초탈해지며 외려 매우 흥이 난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발랄한 톤으로 어째 X된 것 같은 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내가 X된 이야기는 어른들에게는 기껏 어렵게 취업해놓고 몇 년 만에 퇴사하는 이상한 요즘 것들의 속사정을, 퇴사가 아른거리는 또래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를, 그리고 같은 고민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심전심 위로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말고.




달콤했던 20대 직장인의 월급과 명함이여


<출처 - tvN>

3년 전, 나는 ‘졸업생=임용고시생’ 등식이 성립하는 사범대를 졸업했다. 나는 애초에 교직 생각하지 않았기에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고, 운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다. 덕분에 나는 신림과 노량진에서 고생하는 동기들에게 여유 있게 베푸는 쪽에 가까웠다.


고시 공부나 취업 준비에 지친 친구들에게 고기를 사주고, 때때로 동아리 후배들 회식에 양복 차림으로 가서 멋지게 카드 슬래시를 선보이던 날들. 사촌 동생, 조카들에게 명절 용돈 챙겨주며 집안 어른들 앞에서 어깨 으쓱할 수 있던 날들. ‘우리가 시간이 없지, 돈이 없냐’ 하면서 직장동료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미친 듯이 말 달리는 야간 할증 택시를 타고 집에 가던 그 찬란했던 날들.


아, 돌이켜보면 20대 대기업 신입사원의 월급과 명함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그러나 어느 순간 뱃살을 얻고 총기를 잃게 하는 그 달콤함이 싫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그 나이, 서른 살에 영국 대학원 유학을 떠나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하나같이 충만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코로나 19 사태에 쫓겨 영국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 나의 통장 잔고는 60만 원. 심지어 아직 교통비와 휴대전화 요금이 빠져나가기 전이다. 하루 세 번 양치 열심히 했는데 생겨서 억울한 충치 치료비와 재취업을 위한 각종 자격증 시험비로 계획과는 다르게 잔고가 매우 위험해졌다. 분명 영국 유학에 후회가 없었는데, 앞으로는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이 샘솟는다.


이젠 당장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 달 대출 원리금을 갚을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새삼 서울 가는 광역버스가 원래 이렇게 비쌌나 싶고, 생각 없이 사용하던 LTE 무제한 요금제를 꼭 써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그나마 자기소개서 쓰기 괜찮은 집 앞 카페가 아메리카노 2,500원이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 와중에 카페 갈 여유가 있네 하시는 타박하실 분도 있겠지만, 코로나 19를 틈타 동네 도서관이 보수 공사 중이라 공짜로 공부하러 갈 곳이 없다.




얻어먹는 것이 익숙해지는 고학력 30대 백수의 삶


<출처 - Unsplash>

‘기침과 사랑, 그리고 가난은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코로나 19 때문에 파티룸을 빌려서 저녁 식사를 한다던가, 1인 5만 원 참치집에서 모임을 할 때는 귀국을 축하해주는 자리조차 표정 관리가 안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영국에서 소주를 못 먹었더니 술이 많이 약해졌다고 핑계를 대며, 지하철 막차에 탑승하기 위해 뛰어가며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귀국 후 만난 대부분의 지인은 감사하게도 밥과 술을 사준다. 어느새 대리/과장급이 된 또래 친구들과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한 동료들은 예전보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제 주된 밥상머리 이야기는 부동산과 주식이다. 확실히 요즘 30대 사이에서 주식이 유행인 것 같다. 나도 예전에는 주식 열심히 했었는데… 유학자금으로 전량 매도한 뒤 너무 오랫동안 업데이트가 안 되어서 이제는 대화에 낄 수가 없다.


그렇게 얻어먹는 자리를 마친 뒤,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친구 뒤에선 기분은 묘하다. 예전이었다면 응당 2차 계산을 하거나, 최소한 편의점에서 숙취해소 음료라도 사 왔을 텐데. 지금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서 있을 뿐이다. 나서는 가게 문을 잡아주며 민망하지 않으려 너스레를 떤다. 아이고, 이렇게 고학력 백수 밥 사주셔서 감사합니다요. 제가 꼭 조만간 자리 잡아서 보은 하겠습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 집에서 먹고 자며 내 앞가림만 하면 되는 처지에, 사실 가난이라는 단어를 쓰기조차 부끄러운 일이다. 그저 과거에 비해 상대적인 허전함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저 서른 살 넘은 백수 자식이 되어 부모님 퇴근 전에 설거지와 빨래를 마치고, 저녁상을 차려드리며 죄책감을 덜어보는 것이다.

 



저도 생각 없이 퇴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다시 한번 구직 시장에 뛰어들며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는 요즘,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나를 내보여야 하는 시간이다. 희망에 부푼 마음으로 나를 포장하여 내보이고, 값이 매겨지고, 쉽사리 선택받지 못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래도 두 번째 겪는 구직활동이니 조금 나을까 싶었는데, 막상 다시 마주하니 마음이 애달픈 것은 전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모두가 살기 퍽퍽해진 바람에 잠잠해졌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 퇴사는 커다란 사회적 화두 중 하나였다. 중소기업, 대기업,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신입직원 일 년 내 퇴사율이 두 자릿수를 넘어서는 시대. 밀레니얼 세대는 직장인이 부러운 취준생,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 취준생으로 돌아간 퇴사자가 뒤섞인 동년배들과 살아가고 있다. 90년대생 밀레니얼에게 퇴사와 이직은 60년대생 베이비부머의 정서와는 다르게, 나에게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의외로 퇴사를 이야기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 보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에게도 다 계획이 있었다.



<계속>




이 글은 딴지일보에 게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65314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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