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를 다시 읽어보니, 가혹한 현실에 치여서 퇴사 후 유학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던 것 같다. (앞으로 후회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퇴사 후 유학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대학-취업-결혼-육아”로 이어진 대한민국 표준의 고속도로를 벗어나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잠시 지방도로를 탔던 30대 유학 생활의 감상을 적어본다.
나는 도보 15분 거리 내에 학교와 기숙사, 그리고 마트에 닿을 수 있는 한적한 도시에서 유학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래서 영국에 와서 고민거리는 단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오늘 뭐 해 먹지'와 '숙제 언제 다 하지'.
처음에는 삼시 세끼를 해 먹어야 하는 것이 정말 이렇게 귀찮은 일일 수 없었다. 나름 한때 직장생활의 낙이 미식가 부장님들 따라다니는 맛집들이었는데, 영국 식당의 극악 가성비에 나는 생존을 위해 온갖 유튜브 요리 채널을 구독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백 선생님. 당신은 비루한 유학생 요리의 구원이셨어요. 감사합니다, 비비X. 비비X 즉석식품이 해외 교포와 유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르실 거예요.
게다가 10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기껏해야 주방 냉장고의 1/5만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거의 매일 마트에 가 그날의 식자재를 사 와야 했다. 집안의 냉장고는 부모님에 의해서 마법같이 채워지기만 했는데… 여기서는 마트를 돌아다니며 어디 계란이 더 싼 지, 휴지 묶음 세일은 안 하는지를 기웃거리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아마 직장생활을 경험하기 전에 유학을 왔더라면, 이런 단순한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쌓여가는 업무와 카드값, 재테크, 가족 행사, 사내정치, 인맥 관리, 자기 계발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소박하지만 온전히 하루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삶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나를 소비하여 월급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생산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반경 몇 km의 세상에서, 두 자릿수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만 하면 되다니. 이 얼마나 단순하고도, 명쾌한 삶이란 말인가! 이래서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지금이 좋은 시절이다.’라고 주야장천 이야기를 했나 보다.
첫 학기, 단과대학 300명 학생이 함께 듣는 대형 강의장에 나타난 교수님은 코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나의 학부 시절에는 피어싱은커녕 화려한 액세서리를 한 교수님도 못 만나봤었기에 조금 충격적이었다. 음… 역시 서양인들은 다르구나.
일 년을 타지에서 살아가다 보면 이 같은 낯선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아직도 공공기관 행정업무를 우편으로만 접수해야 할 때. 이혼한 부모님과 그들의 파트너, 그리고 의붓형제들이 함께 모인 영국 가정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었을 때. 유명 가수 콘서트 키스타임에서 좌우 앞뒤 게이, 레즈비언, 국제커플, 노부부 등 다양한 커플에 둘러 쌓여 말 못 할 쓸쓸함이 쌓였을 때.
영국은 문신이 있어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고, 코를 뚫어도 좋은 교수님이 될 수 있으며, 뚱뚱해도 남녀노소 누구나 헐벗고 운동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되고, 선생님은 제자를 잘 가르치면 되고, 운동할 때는 내 몸이 편하기만 하면 되니까.
아마 나의 유학 생활이 단순했듯, 이들의 삶 또한 좀 더 단순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순한 영국의 삶을 살다 보니 한국이 얼마나 각 잡고 사는 곳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사회적 이상향에 대해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는 이미지,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시뮬라크르에 가려 본질을 잊고 살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지 않고 ‘인스타각’ 나오는 멋진 장소를 가지 않아도,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충만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등산복과 등산화 없이도 산에 오르고, 대단한 러닝화와 스포츠웨어 없이 운동할 수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 남들의 시선에 초연해지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 담백 해지려고 노력했다.
파랑새는이곳과저곳, 어디에든있다
벨기에의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희곡 ‘파랑새’를 알고 계신지. 한 남매가 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파랑새를 찾아 멀리 여행길을 고생고생하고 돌아왔더니, 정작 집 문 앞에 파랑새가 있었더라는 동화. 직장인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만을 추구하는 파랑새 증후군 (Bluebird syndrome)이라는 말에 유래가 되며,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하는 이야기로 흔히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원작이 전하고자 이야기는 집 앞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결론이 아니었다. 남매가 환상의 여정 속에서 추억과 숲, 밤의 파랑새를 만났지만 닿을 수 없어 좌절하는 과정이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은 참 다사다난했다. 브렉시트, BLM시위, 코로나 19 락다운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참 여러모로 많았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스쳐가는 뉴스 기사 한 줄이었을 일들이 내 삶의 흔적을 좀 더 다채롭게 해 준 이야기 한 문단이 되었다. 또한, 그 이야기들 덕분에 브런치를 쓰고, 외부에 글을 기고할 수도 있게 되었다.
대학원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학부 졸업 후 바로 온 생기발랄한 20대 학생'과 '경력 중단 후 떠나 온 30대 학생' 두 부류로 나뉘었다. 소셜미디어(인스타그램 vs 링크드인), 주말 여행지(런던 쇼핑 vs 국립공원 하이킹), 파티 장소(클럽 vs 홈파티) 등등 서로 다른 것이 많았는데, 우리끼리는 인종, 국가, 성별 등 모든 차이 중에 단연 으뜸은 세대 차이라며 농담하곤 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스쳐가는 대학원 1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할지 잘 알고 있던 중고 학생들의 눈에 좀 더 독기가 서려있었던 것 같다.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너무도 자유롭고, 늘 꿈꿔왔던 삶인데 감히 어떻게 불평불만을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온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라고 다짐하며 서로를 다독이곤 했다.
아마 20대에 학부 졸업을 하고, 바로 유학을 떠나왔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봤다. 원래 부지런 떠는 성격인지라, 아마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채워 넣느라 바쁜 시간이었을 것 같다.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빼곡히 나를 가득 채워 넣으며 희열을 느꼈겠지.
그러나 30대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짐은 3단 이민 가방을 2단으로 줄여도 될 만큼 줄어 있었다. 간당간당해진 통장잔고에 기념품을 많이 살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30대 유학은 채워 넣는 것보다 비워내고 가는 것이 더 많았다. 20대 대기업 신입사원의 달콤함을 덜어내고, 단순하고 슴슴한 삶의 맛을 배워갔던 시간이었다.
해외 유학을 사회적 성공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실익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비록 지금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나는 어쩐지 X된 것 같습니다’라는 주제로 연재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무뎌진 내 영혼과 펜대를 날카롭게 해 준 이 소중한 시간을 아직은 후회하지 않고 싶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