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맠크나 Jan 27. 2021

어쩐지 X된 것 같습니다만 (4부, 完)

코시국의 취업 천태만상

영국에서 마주한 외국인 노동자의 벽


유학을 떠나며 개인적으로 가졌던 목표 중 하나는 영국에서 근무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공부로 바쁜 학기 중에 학교 취업지원센터 워크숍에 열심히 참여하며 영문 이력서도 가다듬고, 모의면접에 참가하며 2020년 멋진 영국 취업을 꿈꿨다.


비록 한국에서의 경력이 있더라도 영국에서는 검증 안된 외국인일 뿐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인턴과 단기계약직부터 지원하며, 이 공고에 30대 석사 지원자는 나뿐일 것이라며 자조하기도 했다. 곧 수많은 다른 외국인 학생들도 나처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높디높은 외국인 노동자의 벽을 느끼던 중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19까지 들이닥쳤다. 설상가상이었다. 도대체 영국 회사원들은 재택근무를 하는 건지, 놀고 있는 건지 세월아 네월아 채용절차가 늘어졌다. 그렇게 지원한지도 깜빡하고 있던 몇몇 회사들에게서 운 좋게 연락이 왔고, 어렵사리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면접관과 마주하고 도 어려운 영어면접을 전화/화상으로 보다 보면, 한 마디라도 더 잘 들어보겠다고 최대한 볼륨을 키웠다. 그렇게 어렵사리 20~30분 면접을 끝낸 후에는 먹먹해진 귀와 자책감 가득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산책을 나가 마음을 달래곤 했다.


기숙사 계약이 끝나가던 지난 9월,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영국 취업의 꿈을 붙잡고 지지부진한 취업과정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한국에 돌아가 하반기 취업시장을 두드릴 것인가. 기숙사 퇴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닿을 듯 닿지 않는 해외 취업의 기회들을 나를 더욱 약 오르게 했다. 내 나이가 한국 남자 신입사원 맥시멈이라는 취업카페의 '~카더라 통신' 찌라시 글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는 순간


기울어진 운동장에  마음 조급한 취업준비생이 되어보니 나도 모르게 리석어졌다. 퇴사하고 유학까지 가놓고서는 정작 당장 쓰일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영국 한인마트 유통직 공고를 왜 심각하게 보고 있는 건지. 현타가 쎄게 밀려왔다.


살다 보면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는 순간들이 있다. 마치 행복을 위해 돈을 벌지 않고, 돈을 위해 행복을 버릴 때처럼. 앞으로 일자리가 더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에 취업준비에만 몰두하여, 원래 힘 쏟아 마무리해야 할 논문 작성을 소홀히 했다. 갈팡질팡하던 내 마음을 붙잡아준 것은 형이 해준 한 마디 위로였다.


‘네가 영국에서 일 못해보고 돌아온다고, 아무도 너를 실패한 유학이라 비난하지 않아. 대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렴.'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초에 유학의 목적은 좋은 교육과 원하는 분야의 경력개발이었는데, 해외 생활에 경도되어 영국에 취업하는 것이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그래, 대자연 앞에서 겸손해지자.' 런던에 머물며 취업준비를 하려 구했던 에어비앤비 숙소도 주인의 변덕으로 취소되는 날, 분명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귀국하는 것이었다. 돌아가자.

 

<출처 - Google>

결과론적으로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얼마 후, 영국은 곧 코로나 19 감염자 수가 급격히 늘어 현재는 하루 5만 명씩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변종 바이러스로 재차 심각한 봉쇄령(락다운)이 실시됐으며, 여러 국가에서 영국발 입국 거부까지 일어나고 있다.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헛헛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정말 타이밍 좋게 영국에서 잘 돌아왔다고 위로해주었다.




코시국(코로나19 시국)의 취업 천태만상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원격근무/수업을 가능하게 하고, 스마트폰으로 전화와 카톡 밖에 못하시던 아버지도 어플로 배달음식을 시키게 한 코시국이다. 오죽하면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10년을 앞당겼다고 평가받을까. 기업 인사팀도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별별 새로운 채용 프로세스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기존 오프라인으로 운영하던 인적성 시험이나 면접을 단순히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다 보니 기존 정답과 오답을 가르는 시험보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된 인적성 검사로 바뀌었고, 메일 수신 한 시간 안에 엑셀 및 보고서 과제를 수행해서 회신하는 시험을 치루기도 했다. 온라인 면접도 인공지능이 지원자를 평가하는 AI면접이나 기획안 발표자료를 화면으로 띄어놓고 하는 발표면접이 이뤄졌다.

 

2020년 취업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줌, 스카이프 같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활용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출처 - KBS NEWS>


갑작스레 바뀐 채용 프로세스에 회사도, 지원자도 혼란스러운 일이 많았다. 영국에서 지원했던 한 국내 회사는 화상면접을 볼 수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막상 1차 실무진 면접이 끝나자 2차 임원면접은 반드시 대면 면접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정만 조정해주시면 내일이라도 당장 한국행 비행기를 타겠다며 열정을 보였지만, 실무진의 난처한 기색을 알아채며 탈락을 예감했다. 그래, 사장님한테 노트북 앞에 앉아서 헤드폰 씌워드리기는 너희도 좀 그러겠구나...


인사팀 직원의 처지가 이해가 갔지만, 면접 보겠다고 기숙사 방 짐 다 복도로 내놓고, 화면에 보이지도 않을 방구석까지 말끔하게 청소하고, 오랜만이 양복을 꺼내 말쑥하게 차려입은 나 자신이 씁쓸했다.


9개 문항 7,000자 넘는 대하소설급 자기소개서를 쓰게 했던 다른 회사는 면접자는 면접장에 오게 하고, 면접관은 재택 화상면접을 하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면접자는 면접장 오다가 코로나 19 걸려도 된다는 것인가. 면접자 얼굴은 보여야 한다며 준 투명 마스크를 쓰고, 불투명 마스크 쓴 면접관 표정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코시국을 대처하는 건 정말 회사마다 제 각각 창의성을 펼치는 일이었다.




어째 X된 것 같은 건, 너뿐만이 아니야


매년 갱신하는 여름철 최고 기온처럼, 습관적으로 뉴스에서 나오는 최악의 취업난은 흔한 레토릭이 되어 별 감흥이 없었다. 취업이 잘되는 신바람 난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 있었나.


1999년 이후로 최악이라는 청년실업률, 늘어가는 비경제활동인구, 신규 채용 계획을 잡지 않은 기업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린 자료와 기사들이 쏟아졌다. 아직 2020년 통계자료가 완전히 나오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IMF와 코시국의 취업난 비교를 할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비단 청년의 문제만인 것도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로 무급휴직 기간을 버티는 과장님, 눈물을 흘리며 가게문을 닫는 자영업 사장님, 명예퇴직을 선택한 부장님까지. 서로의 안녕을 확신할 수 없는 이 시국에 쉽사리 송년회 이야기를 단톡방에 꺼내기가 어려웠다. 지난 2020년 연말, 우리가 송년회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 5인 이상 집합 금지 때문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이번 연재를 시작하며 유독 편집자에게 글을 쓰면서 자존감이 더 떨어진다며 징징거렸었다. '낄낄, 쟤 진짜 X 됐네'하며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할 생각에 부들부들 자판을 두드리곤 했다. 상황이 구리면, 사람도 구려진다 했던가. 어느새 마음이 못나져 아주 삐뚤어질 뻔했다.



'난 너 같이 일 잘하는 신입 처음 봤었어. 어디서든 잘할 거야.'라고 응원해주신 전 직장 상사, '나도 석사 학위와 나이 때문에 취업 걱정이 넘쳤었어요'라며 비타민 음료를 선물해준 따뜻한 친구, '네가 놀아봤자 일 년이지.'라며 세상 물정 모르는 믿음을 가져주신 부모님, 그리고 먼저 경험한 선배와 같은 마음으로 조언을 건네주신 독자님까지. 실상은 연재 덕분에 복에 겨운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어째 X된 것 같다며 감히 수많은 독자님께 징징거린 스스로가 부끄러운 연말이었다. 재난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차오른다. 말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도처에 있었다. 내가 무릎 즈음 차오른 역경이 두려워 소리칠 때, 그들은 이미 턱밑까지 차오른 위기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코시국을 정통으로 맞고 고생 고생한 30대 밀레니얼 귀국 분투기. 나름 특별하다 생각한 나의 이야기는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국경과 세대를 넘어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 중에서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얘는 X됐다는거야, 안 X됐다는거야. 그 최후는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열린 결말로 남겨둔다. 그저 제 X된 이야기로 어려운 시절 과거의 자신을, 코시국 어디선가 유학 중인 지인을, 상황에 몰려 못난 마음을 가지게 된 누군가를 떠올리신다면, 그들을 따듯한 마음으로 어루만져주십사 부탁드린다. 아마 저도 그중에 한 명일 테니까.



<완결>




이 글은 딴지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665042998


매거진의 이전글 어쩐지 X된 것 같습니다만 (3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