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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맠크나 Dec 21. 2020

어쩐지 X된 것 같습니다만 (3부)

30대의 유학은 무엇이 달랐나

지난 연재를 다시 읽어보니, 가혹한 현실에 치여서 퇴사 후 유학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던 것 같다. (앞으로 후회될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퇴사 후 유학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대학-취업-결혼-육아”로 이어진 대한민국 표준의 고속도로를 벗어나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잠시 지방도로를 탔던 30대 유학 생활의 감상을 적어본다.




그렇게 원하던 유학 가니까 어때?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통장잔고 탈탈 털어 떠난 나의 유학은 지인들에겐  흥밋거리였던  같다. 그들은 종종 ‘그렇게 원하던 유학 가니까 어때?’라는 반복되는 질문을 했고, 나는 자판기처럼 뽑아낼  있는 그럴듯한 대답을 고민해야 했다.

매일 오르내리던 언덕길, 브리스톨 파크 스트리트 (Park St.)


나는 도보 15분 거리 내에 학교와 기숙사, 그리고 마트에 닿을 수 있는 한적한 도시에서 유학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래서 영국에 와서 고민거리는 단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오늘 뭐 해 먹지'와 '숙제 언제 다 하지'.


처음에는 삼시 세끼를 해 먹어야 하는 것이 정말 이렇게 귀찮은 일일 수 없었다. 나름 한때 직장생활의 낙이 미식가 부장님들 따라다니는 맛집들이었는데, 영국 식당의 극악 가성비에 나는 생존을 위해 온갖 유튜브 요리 채널을 구독할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백 선생님. 당신은 비루한 유학생 요리의 구원이셨어요. 감사합니다, 비비X. 비비X 즉석식품이 해외 교포와 유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르실 거예요.


게다가 10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에 살았던 나는 기껏해야 주방 냉장고의 1/5만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거의 매일 마트에 가 그날의 식자재를 사 와야 했다. 집안의 냉장고는 부모님에 의해서 마법같이 채워지기만 했는데… 여기서는 마트를 돌아다니며 어디 계란이 더 싼 지, 휴지 묶음 세일은 안 하는지를 기웃거리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앞날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미뤄두고, 그저 매주 쏟아지는 숙제와  생활비에 맞춰 주린 배를 채우는 것에만 머리를 썼다. 유학생의 일상은   가지만 고민하면 되는 단순한 삶이었다. 그렇게 막막하던 영어 에세이를  ,   써내려 갔고, 직장생활 3 동안 쌓였던 10kg 부기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먹고 자고 공부만 하면 되는 학생의 삶이라니!


학교-샌드위치 가게-도서관-마트-집, 온종일 1km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삶


아마 직장생활을 경험하기 전에 유학을 왔더라면, 이런 단순한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쌓여가는 업무와 카드값, 재테크, 가족 행사, 사내정치, 인맥 관리, 자기 계발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복잡한 삶에서 벗어나, 소박하지만 온전히 하루를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삶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나를 소비하여 월급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생산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반경 몇 km의 세상에서, 두 자릿수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만 하면 되다니. 이 얼마나 단순하고도, 명쾌한 삶이란 말인가! 이래서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지금이 좋은 시절이다.’라고 주야장천 이야기를 했나 보다.


마음이 나약해질 때는 많은 것들을 대가로 얻은  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다짐하곤 했다. 이를테면 지금 듣는 수업 학비가 지난 3년간 열심히 모았던 결혼자금이라는 생각이 들면, 수업 시간에 졸다가도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같은  ! 대학생 방학이면 부모님 돈으로 다녔던 토익 학원은 데이트하러 땡땡이도 치곤 했었는데죄송합니다, 어머니




우리는 얼마나 각 잡고 살아가고 있는지


첫 학기, 단과대학 300명 학생이 함께 듣는 대형 강의장에 나타난 교수님은 코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나의 학부 시절에는 피어싱은커녕 화려한 액세서리를 한 교수님도 못 만나봤었기에 조금 충격적이었다. 음… 역시 서양인들은 다르구나.


일 년을 타지에서 살아가다 보면 이 같은 낯선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아직도 공공기관 행정업무를 우편으로만 접수해야 할 때. 이혼한 부모님과 그들의 파트너, 그리고 의붓형제들이 함께 모인 영국 가정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었을 때. 유명 가수 콘서트 키스타임에서 좌우 앞뒤 게이, 레즈비언, 국제커플, 노부부 등 다양한 커플에 둘러 쌓여 말 못 할 쓸쓸함이 쌓였을 때.


영국은 문신이 있어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고, 코를 뚫어도 좋은 교수님이 될 수 있으며, 뚱뚱해도 남녀노소 누구나 헐벗고 운동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되고, 선생님은 제자를 잘 가르치면 되고, 운동할 때는 내 몸이 편하기만 하면 되니까.


아마 나의 유학 생활이 단순했듯, 이들의 삶 또한 좀 더 단순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순한 영국의 삶을 살다 보니 한국이 얼마나 각 잡고 사는 곳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사회적 이상향에 대해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는 이미지,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시뮬라크르에 가려 본질을 잊고 살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지 않고 ‘인스타각’ 나오는 멋진 장소를 가지 않아도,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충만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등산복과 등산화 없이도 산에 오르고, 대단한 러닝화와 스포츠웨어 없이 운동할 수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 남들의 시선에 초연해지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며, 자신의 감정에 솔직 담백 해지려고 노력했다.




파랑새는 이곳과 저곳, 어디에든 있다


벨기에의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희곡 ‘파랑새’를 알고 계신지. 한 남매가 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파랑새를 찾아 멀리 여행길을 고생고생하고 돌아왔더니, 정작 집 문 앞에 파랑새가 있었더라는 동화. 직장인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이상만을 추구하는 파랑새 증후군 (Bluebird syndrome)이라는 말에 유래가 되며,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하는 이야기로 흔히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원작이 전하고자 이야기는 집 앞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결론이 아니었다. 남매가 환상의 여정 속에서 추억과 숲, 밤의 파랑새를 만났지만 닿을 수 없어 좌절하는 과정이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은 참 다사다난했다. 브렉시트, BLM시위, 코로나 19 락다운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참 여러모로 많았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스쳐가는 뉴스 기사 한 줄이었을 일들이 내 삶의 흔적을 좀 더 다채롭게 해 준 이야기 한 문단이 되었다. 또한, 그 이야기들 덕분에 브런치를 쓰고, 외부에 글을 기고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직이 되었든, 유학이 되었든, 창업이 되었든 일상에서 멀어져 새로운 이상을 찾아 떠나고자 이들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행복은 분명 우리 일상 곁에도 있지만, 분명  넘어 새로운 세상에도 있었다. 그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파랑새를 찾아 나서는 용기, 그리고  여정에서 얻는 오래오래 나를 행복하게   이야기들이 아닐까.




그래서 30대의 유학은 무엇이 달랐나


대학원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학부 졸업 후 바로 온 생기발랄한 20대 학생'과 '경력 중단 후 떠나 온 30대 학생' 두 부류로 나뉘었다. 소셜미디어(인스타그램 vs 링크드인), 주말 여행지(런던 쇼핑 vs 국립공원 하이킹), 파티 장소(클럽 vs 홈파티) 등등 서로 다른 것이 많았는데, 우리끼리는 인종, 국가, 성별 등 모든 차이 중에 단연 으뜸은 세대 차이라며 농담하곤 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스쳐가는 대학원 1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할지 잘 알고 있던 중고 학생들의 눈에 좀 더 독기가 서려있었던 것 같다.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너무도 자유롭고, 늘 꿈꿔왔던 삶인데 감히 어떻게 불평불만을 할 수 있을까.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온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라고 다짐하며 서로를 다독이곤 했다.


아마 20대에 학부 졸업을 하고, 바로 유학을 떠나왔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봤다. 원래 부지런 떠는 성격인지라, 아마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채워 넣느라 바쁜 시간이었을 것 같다.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빼곡히 나를 가득 채워 넣으며 희열을 느꼈겠지.


그러나 30대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짐은 3단 이민 가방을 2단으로 줄여도 될 만큼 줄어 있었다. 간당간당해진 통장잔고에 기념품을 많이 살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30대 유학은 채워 넣는 것보다 비워내고 가는 것이 더 많았다. 20대 대기업 신입사원의 달콤함을 덜어내고, 단순하고 슴슴한 삶의 맛을 배워갔던 시간이었다.


해외 유학을 사회적 성공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실익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비록 지금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나는 어쩐지 X된 것 같습니다’라는 주제로 연재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무뎌진 내 영혼과 펜대를 날카롭게 해 준 이 소중한 시간을 아직은 후회하지 않고 싶다. 정말로.

<계속>




이 글은 딴지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658349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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