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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맠크나 Apr 11. 2020

같은 곳을 한 번 더 여행한다는 것은

26살 남인도, 다시 찾은 인도여행의 두 가지 에피소드

Episode 1. 같은 곳을 한 번 더 여행한다는 것은


남인도 도시 코친 Cochin의 항구 <출처: Flickr>


2015년 남인도 코친 Cochin을 여행하며 가장 많이 본 유형의 여행자는 영국인 중년 여성이었는데, 그들에게서는 '한 시절 히피였던' 혹은 '히피를 동경했던' 느낌이 들었다. 추억 혹은 동경의 장소의 온 그녀들은 쉬지 않고 재잘대는 소녀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흔치 않은 동아시아의 청년은 그들에게 흥미로운 대상이었는지 먼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금 이 도시에서는 비엔날레를 하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훌륭한지, 히피의 성지 고아 Goa를 간다면 어느 해변이 좋은지, 그리고 30년 전의 인도는 어땠는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내 것보다도 큰 배낭을 짊어지고 이동하며, 때로는 해변 카페에 홀로 앉아 맥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중년의 모습은 멋졌다. 젊은이의 반짝거림과는 다른 멋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멋지다'라는 우리말은 영어로 'gorgeous'나 'graceful'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30년쯤 뒤에는 '멋있는 중년'이 되어서 인도에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남인도 코친 Cochin의 보트 안에서


이렇게 거즌 일 년 반 만에 돌아온 두 번째 인도에 적응하고 있다. 여전히 맛있고 값싼 인도의 음식들도, 여전히 생경한 이국 풍경의 아름다움도 즐겁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산에 맞춰 씀씀이를 조절하고 하루하루 제한된 일정에 최대한의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일련의 치열함, 여행의 묘미를 만끽하고 있다.


물론 팔다리 가득 모기 물림이라던가, 몹시 더운 태양빛이라던가, 매캐한 매연과 같은 부수적이고도 성가신 것들도 함께 마주하게 되었다. 잊히는 것들에는 아름다운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시 인도에 돌아오니 잠시 잊고 있었던 디테일한 좋은 점들과 안 좋은 점들이 상기되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한 번 여행한 곳을 다시 여행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디테일들을 추억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즐거움을 지니고 있었다.


잊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었던 사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순간의 희로애락을 묘사하는 수식어들은 시간의 흐름에 교묘히 사라지고, '나는 인도를 여행했다'라는 주어와 술어, 기껏해야 목적어뿐인 문장만이 남는다. 마치 헤어진 연인은 '우리가 사랑했었다', 힘든 수험생 시절이나 취준생 시절은 '그때 열심히 했다', 인생의 황금기는 '그때 잘 나갔다' 정도로 추억되는 것처럼.


물론 2년전의 인도 여행과 그 일련의 기억들은 아직 저렇게 요약되지는 않았다. 아직은 시간이 덜 지났고, 그때 그 시절 사람들과 함께 추억하는 시간들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절 감정의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꾸준히 쓴 여행기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 시절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정말 두 번 칭찬해줘도 마땅하다.




Episode 2. 사막에서 만난 소년과 파란 하늘


인도 서쪽 끝, 자이살메르에서 조금 더 시골로 들어가 쿠리 Khuri라는 작은 마을에서 낙타 사파리를 할 때였다. 일박이일 사막에서 비박하는 일정. 함께하는 일행 여섯에 낙타몰이꾼은 넷이 붙었는데, 9살짜리 주인집 아들이 자기도 낙타몰이꾼이라며 함께 출발했다. "I'm best 낙타 driver, 나라얀." 한국어로 '낙타'라고 발음하며 능청스러운 말투를 쓰는 것을 보니 영락없는 낙타몰이꾼이기는 한 것 같다.


베스트 낙타 드라이버, 나라얀


처음엔 이런 어린애를 낙타몰이꾼이라고 데려가도 되는지 걱정되었지만, 워낙 본인이 자신만만해하는 데다가 사장 역시 'no problem'인지라 함께 사파리를 떠났다. 걱정 외로 나라얀은 낙타도 몰고, 도착해서는 나무장작을 모아 오는 등 나름 일 인분의 몫을 했다. 그리고 순간순간 어른 낙타몰이꾼에게 도제식으로 이것저것을 배우는 듯했다.


문득 내가 아동노동문제를 방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마음 한 편이 무거워져 물었다.

'나라얀, 너 학교는 다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녀. 오늘은 주말이잖아, 바보야.'

'그럼 나라얀은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컴퓨터 게임하고 싶어.'

'아니, 그거 말고. 커서 무슨 일이 하고 싶어?'


뭐 그딴 걸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낙타 driver.'


이 조그마한 아이에게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여겨지며, 70% 정도의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에서 자랐다. 과연 스스로 낙타몰이꾼이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이 소년에게 내가 자라온 것과 같이 한국식 '입신양명'의 꿈을 꾸게 하는 건 과연 옳은 일인가. 개발도상국 오지의 아이들에게 교육은 희망이 아닌 상대적 박탈감과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짧고도 긴 사막의 밤, 이 우연한 인연은 앞으로 국제교육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이 사진에 사막을 뛰어가는 사람이 형이었는지 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튼간에 인생 첫 낙타 사파리는 다양한 사막의 매력으로 즐거웠다. 실제로는 왠지 공룡같이 생긴 매력적인 낙타, 뒹굴기 좋은 곱디고운 모래의 사막, 어쩔 수 없이 모래 1인분 토핑 얹어서 먹게 되는 인도 스타일 닭볶음탕, 쏟아지는 한밤의 별들 그리고 그 별들을 감상할 여력도 없게 만드는 추위까지.


사막의 밤은 정말 추웠다. 엄마 말 안 듣고, 핫팩도 침낭도 안 챙겨간 나 씨 형제의 방한대책은 담요 두 장뿐이었다. 앞으로는 엄마 말을 잘 듣자. 결국 캠프파이어로 덥힌 모래와 숯을 종이박스와 페트병으로 어찌어찌 옮겨 등 밑에 깔고서야, 등줄기 손 한 뼘만 한 따뜻함에 기대어 잠들었다.


아마도 이런 파란 하늘이었던 거 같다. <출처: Wild Frontiers>


사막 추위에 잤다 다를 반복했지만, 비몽사몽 간에도 분명히 기억에 남는 건 분명 밤인데도 파란 하늘이었다. 어두워야 할 하늘이 은은히 퍼져나가는 별빛에 파랗게 물들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찌뿌둥한 와중에도 눈을 뜨자마자 형과 지난 밤 사막의 쏟아지는 별들을 이야기했다. 사막의 밤하늘을 함께 본 형제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아마 우린 20년 후에도 종로 닭볶음탕 집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잊히지 않을 이 밤을 이야기할 거야. 그렇게 30살의 형과 26살의 아우의 인도 여행 이야기를 오래오래 추억할 거야. 참, 함께 여행하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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