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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ossible Apr 26. 2016

너는 영원히 잡히지 않을 거야

너의 친구는 술래니까

양팔을 위로 올려 만세를 하고.

겉으로 보이는 두개의 주머니와 

안에 있는 속주머니에도 손을 찔러보고.

단추를 모두 잠갔다가 풀어도 보고.


네가 시킨 다양한 동작들을 군말 없이 다 했는데,

흐음~하고는 턱을 손으로 감싼 채 날 아래 위로 훑더니

"좋아, 벗어."

이 옷은 마음에 드나 보다 싶어서 냉큼 옷을 벗었는데 

"다른데 몇 군데만 더 가보자."


그렇게 말하고 나를 앞질러 매장을 빠져나가는 너.

순간 나는 울컥해서 

"내가 아바타냐! 

네가 입으라면 입고, 벗으라면 벗게.

적당히 둘러봤으면 그중에서 하나 고르면 되잖아.

보니까 그게 그거구만.

꼴랑 재킷 하나 사는데 두 시간이 웬 말이냐고. 두 시간이.

그것도 내가 입을 옷도 아닌데. "





짜증이 담긴 내 목소리에도 

너는 태연하게 시계를 한 번 보더니 그러더라.

"배고파서 그러는구나?

여기 백화점 푸드코트가 진짜 괜찮대.

말만 해. 오늘은 내가 다 쏠게. 뭐 먹고 싶어?"


이럴 줄 모르고 따라온 것도 아닌데.

나한테 연락이 잣아지면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거, 겪어봐서 잘 알고 있는데.

그래도 요즘 너는 좀 심했어. 


연극표를 예매할 건데 어떤 게 좋겠냐며 물어오고

메시지를 읽지 않는데 전화를 해봐도 괜찮냐고 물어오고 

구두를 신을 건데 7cm가 좋을까, 9cm가 좋을까 물어오고 

편지를 쓸 건데 어떤 말로 시작하면 좋을까 물어오고


수면 위로 드러난 예쁜 모습은 그 사람이 보고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은 내가 보고


'네 남자친구가 그렇게 잘났냐'고 했을 때 너는 화낼 법도 했는데, 

축축하게 젓은 소리로 보는 내가 아플 만큼 가엾은 눈동자를 하고 그랬지. 


이 사람 하고는 정말 잘 해보고 싶다고.

아주 조그마한 것들까지 그 사람 마음에 들고 싶다고. 

그 사람이 찾던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생각하길 바란다고. 


그래서 오늘도 네가 선물할 재킷이 그 사람 몸과 마음에

꼭 맞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피팅모델이 된 건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적에 말이야.

나는 늘 술래가 잘 됐고, 한 번 술래가 되면 오랫동안 했어.

가위 바위 보 여신은 좀처럼 내손을 들어주는 법이 없었고,

내가 잡으려고 쫓아가면 친구들은 벌써 선안에 들어가 있었거든.


술래가 되는 건 지루하고 쓸쓸했어.

무궁화 꽃이 피었다고 끊임없이 말해야 하니까.

멈춰 있거나 도망가거나, 내편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가위바위보를 못하면, 달리기를 못하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어울리고 싶었어, 그래서 애들이 하자는 걸 그냥 했던거야.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놀이를 하고 있어.

네가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한 번씩 고개를 돌릴 때마다

너는 점점 내 곁에 가까워있어.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

잡는다 소리치고 너를 쫓아가면 되는데

잡을 뻔 한 순간도 있었는데.

내가 널 어떻게 잡아.


한번 잡히면 영원히 이 놀이가 끝날걸 아는데.

나는 너랑 계속 놀고 싶은데.

그러니 성실한 술래가 되는 수밖에.


두 계단 위에 네가 서있는데

나는 참 멀게 느껴진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린 네가

날 부르면서 이쪽이라고 손짓을 한다.

그럼 나는 또 가야지.


잡힐 듯 잡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는 또 네곁으로 가야지.

나는 너의 친구, 술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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