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오후다.
그런데 사실 마음은 조금 편하지 않다. 이유는 이러하다.
어제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전문적 학습 공동체(professional learning community)”(이하 ‘전학공’으로 표기)라는 용어에 대한 反感이다. 오전에 산 길을 걸으면서도 집에 와서 있으면서도 내내 머릿속에 있다.
며칠 전부터 전학공 관련 논문 6~7편을 꼼꼼하게 읽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답을 포함한 논문은 없었다. 모두 ‘전학공’에 대한 거의 편파적인 확산 논리와 그 적용방안에 대한 결과 그리고 상황에 대한 논문들이었다.
내가 불만인 것은 ‘전학공’의 취지와 실행방안, 그리고 현장 적용의 방식(거의 동의한다.)이 아니라 ‘전학공’이라는 용어 표현방식에 있다. 나의 불만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전문적(professional)이라는 단어의 사용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교사는 전문직에 속한다.(반론 있음) 전문직에게 전문적이라는 필터를 앞에 놓은 것은 둘 중 하나는 ‘전문’이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중으로 강조하면 의미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의미가 있다. 그럼 앞과 뒤의 '전문' 중 부정적 의미의 하나는 무엇일까? 최소한 나에게는 교사가 전문성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니 전문적이라는 필터를 동원하는 것이 아닐까! 피해 심리라고? 그럴 수 있다. 교사를 전문가로 대접해주지 않는 세상에 살다 보니 그런 심리가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이중적 단어 사용에 대한 논리적 해석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2.
두 번째가 더 중요하다. ‘학습’이라는 말이다. 왜 ‘연구’는 안될까? ‘학습’의 영어 ‘Learning’의 뜻은 ‘study, action of acquiring knowledge’(공부, 지식의 획득)이다. 반면 ‘연구’의 영어 ‘Research’의 뜻은 ‘diligent scientific inquiry and investigation directed to the discovery of some fact’(사실의 발견을 위한 성실한 과학적 조사와 탐구)다. 왜 교사의 직업적, 학문적 활동은 학습이어야 하는가? 우리도 연구할 수 있다. 아니 연구이어야 한다. ‘전학공’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M.I.T 교수였던 Rosenholtz의 1989년 연구(PROFESSIONAL LEARNING COMMUNITIES: WHAT ARE THEY AND WHY ARE THEY IMPORTANT?)이다. 교수들에 의한 교사문화의 연구가 가지는 한계가 여기에 있다.
왜 교사의 학문적 활동은 '연구'가 아니라 '학습'이 되는가? '연구'와 '학습'은 분명히 격이 다르다. 교사도 사실의 발견에 관심이 있고, 교사도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과학적 탐구를 수행하고 있다. 교사의 학문적 활동을 오직 공부나 지식의 획득에만 국한한 89년(30년 전이다.) 미국 대학 교수의 시각에 2022년 대한민국의 교사인 나는 쉽게 동의하기 싫다.
3.
이런 이유로 나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전문적이라는 말을 빼자! 이미 교사는 충분히 전문적이다. 교사 집단을 전문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는 것은 알고는 있다.(교사 스스로 전문적이라고 여기고 그에 맞는 태도를 견지해야 교사가 전문적이라는 인식이 정착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학습' 대신에 '연구'라는 단어로 바꾸자. 이유는 위에 설명한 바와 같다. 그러면 이렇게 쓸 수 있다. ‘교사 연구 공동체’ 또는 ‘교사 연구 모임’. 사실 연구라는 말만 들어가면 충분하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반론은 인정하지만 비난은 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