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학교, 교육, 비전, 그 외……
1. 현재
지난 4년 동안 교장이라는 직책 덕에 방학을 거의 쉬지 못하고 학교를 나가다가 교사로 돌아온 뒤 방학은 왠지 어색하고 찜찜하다. 벌써 12~3일이 지난 방학이니 끝나는 날도 거의 그만큼 남아있다.
그 방학, 한 중간에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 사이 자주 학교에 출근하여 지난 학기 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학업 세부 특기 능력이라는 것을 기록하였는데 이 일이 선생님들에게는 참 만만치 않은 일이다. 금칙어도 많고 글자 수는 1500바이트로 제한되어 있지만 한 학생에 대하여 한 학기 수업을 하며 1500바이트, 글자 수로 계산하면(공백 제외) 약 470자 정도의 긴 문장을 기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대학입시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참 고교 교사로서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한 명의 학생이 수업 중에 보여준 수업과 관련된 특기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지만 그 기록의 거의 유일한 목적이 대입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이 자료가 모든 아이들의 대입에 활용되지도 않고 거의 소수 몇 %의 아이들이 대학 진학에 쓰일 뿐인데 현재 고등학교 교사들은 모든 아이들의 특기를 기록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담임교사가 기록해야 할 '자, 동, 봉, 진'의 기록과 동아리 활동 담당 교사의 기록 등 한 명의 학생의 생기부에 기록되어야 할 자료는 참으로 많다. 이것이 전부 대입을 위한 자료가 되는데 이 자료가 대입에 가치 있게 작용하는 경우는 역시 낮은 비율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 일을 방학 중에 완성해야만 한다.
2. 학교
학교는 사실 연중무휴의 기관이다. 수업일수가 190일로 정해져 있을 뿐, 학교 행정실과 교장, 교감, 일부 선생님들은 매일 출근해서 자신의 고유 업무를 처리한다. 즉 공공기관으로서 학교는 무휴지만 교육 기관으로서 학교는 방학이라는 특별한 제도를 통해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휴식을 부여한다. 물론 아이들도 교사도 이 휴식을 마음껏 즐길 수는 없다.
아이들은 상급학교 진학이나 개인의 발전을 위해 이 기간에 다른 교육기관의 도움으로 공부를 한다. 교사 역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들과 지낸 한 학기 혹은 1년의 전체 과정을 뒤돌아보고 기록을 통해 그것을 정리하는 기간이다.
자주 듣는 이야기 중에 교사의 방학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과 더불어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는 학교라는 구체적 역할을 잘 알지 못해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리는 섣부른 평가는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겨울 방학이면 새 학년의 준비도 있다. 교장 재임 당시에는 여러 선생님들과 다음 학기에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잘 정리하여 교육계획을 세우는 일을 이 시기에 했다. 선생님들의 업무도 조정하여 줄이고 또 함께 할 일을 잘 정리해서 그 일이 닥쳤을 때 비교적 수월할 수 있게 준비하는 기간도 역시 방학이다. 교사로 있는 지금 학교는 그 일을 하기는 할 텐데 교장도 아니고 부장도 아닌 내가 개입할 부분은 별로 없어 보이기는 한다.
도교육청에서 교사들의 업무 줄이기를 통한 교육 활동 전념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본청의 공문 생산량을 줄여야 하고 가장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 확인 공문을 줄여야 하는데 그 조차도 참 요원해 보인다. 그래야만 되는 줄 아는 전문직들이 여전히 압도적인데 그들의 한결같은 항변은 교육부 등 상급기관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와 2학기에 내가 맡은 업무는 ‘안전’이었다. 4.16 이후 지속적인 안전에 대한 요구가 중가하고 그에 발맞춰 학교 교육과정에도 안전 교육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각종 안전 교육 시수가 1년 51시간이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51시간은 매우 많은 시수다. 전체 7개 항목이다. 4.16의 비극이 년간 51시간의 안전교육 미비로 일어난 것인가? 라는 다소 극단적인 의문까지 든다.
학교 안전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형식적으로 부과된 의무 시수는 수업 한 시간 해 보지 않은 관료들의 일방적인 머리에서 출발했을 것인데, 연말에 학교안전정보센터에 보고하면서 현실적으로 이 시수를 다 하지 않는다고 보고할 학교는 한 곳도 없다. 그래서 학교는, 아이들은 과연 안전해지는가?
3. 교육
지난주에 오래된 제자의 전화를 받았다. 올해 47세 되는 제자이니 26~7년 전 고등학교 제자다. 이제 자리 잡고 살다 보니 선생님이 생각나서 전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흠칫 놀랐다. 좋은 생각일까? 아니면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제자는 지금까지 좋지 못한 기억으로 살아왔는지…… 표면적으로는 생각이 나서 뵙고 싶다는 이야기였지만 당시 나의 태도가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음 주 화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으니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좋은 일인지 아니면 좋지 못한 기억 때문인지……
교육은 이를테면 오랜 기다림이다. 변화의 주체는 오직 당사자 본인이며 그 변화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변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변하지 않으면 다 죽을 것처럼 변화를 재촉한다. 아이들을 향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쏟아놓고 아이들에게 빨리 취사선택하지 않는다고 몰아붙인다. 아이들은 엉겁결에 선택한 일들로 힘들어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은 그런 사소한 갈등은 무시해버리고 만다. 오직 목표를 위해 토끼 몰이하듯 몰아붙이고는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운명이라고 아이들을 설득하거나 강변하고 있다.
교장 4년 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철학 수업을 했다. 교장 임기를 마칠 때쯤 사람들이 물었다. “지난 4년 동안 철학 교육을 했으니 무슨 효과가 있나요?”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아무 효과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효과를 바란 적도 없습니다.” 나는 사실 중학교 철학을 수업하면서 아이들이 철학적이 되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사람들은 매우 의아해 한다. 그럼 왜 그런 교육을 했지?
나는 당시 철학 책을 출간하며 이런 글을 책 앞에 제언이라는 이름으로 실었다.
“2020년에는 내가 있는 지수중학교에서 이 철학 교육을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직접 교재를 만들고 직접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볼 생각이다. 아무런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입과 산출의 공식으로 접근할 문제는 분명 아니다. 어쩌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또 어쩌면 20대가 되어서 철학적 사유와 만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주 오래 시간이 흐른 뒤일 수도 있다.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발아의 조건을 제공한다. 하지만 결국 발아와 성장의 결정적 요인은 씨앗 스스로 껍질을 깨고 발아해야만 한다. 교사인 나는 철학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은 각자에게로 가서 언젠가 조건이 맞으면 분명 싹을 틔울 것이라 믿는다.”
지금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미래교육’ ‘인공지능’이라는 거대 담론을 교육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지만 본질은 분명하다. 아이들에게 ‘미래교육’ ‘인공지능’과 관련된 내용을 가르쳐야 하지만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하고 있는 현재 교육의 터전 위에 미래에 다가 올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교육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고 ‘미래교육’이나 ‘인공지능’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인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금 교육이 곧 미래 교육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도 교육적 차원에서 본다면 그것이 학교를 넘어 존재하거나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미래교육’이나 ‘인공지능’등이 교육의 객체는 될지언정 교육의 주체는 현재의 우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비전
영어 비전(vision)은 이런 어원이 있다. 약 1300년경부터 사용된 이 단어의 본래 뜻은 "상상이나 초자연적인 것을 본 것"이라는 의미인데 이 말은 고대 프랑스어 vision에서 유래했다. 그 뜻은 "존재, 광경; 보기, 외관; 꿈, 초자연적인 광경" 이 말의 본래 원천은 역시 라틴어인데 라틴어 visionem(주격 visio)의 뜻은 "보는 행위, 광경,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쓰이는 이 단어는 ‘미래상’ ‘계획’ ‘전망’ 등의 의미가 있다.
교육에는 비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교장 재임 4년 동안 나는 지수중학교 비전을 이렇게 세웠었다. “삶을 가꾸는 교육!”
이 비전을 만들기 위해 여러 선생님들과 약 2~3개월 동안 열심히 논쟁을 거듭한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삶이 우리의 교육에 의해 잘 가꿔질 수만 있다면 교사로서 더 바랄 게 없지 않은가!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마다 비전은 다르다. 하지만 그 밑으로 흐르는 생각은 큰 차이가 없다. 학교 교육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 이 단순한 말처럼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배움과 이해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과 방향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우리의 비전이고 또 비전이어야 한다. 이 지극히 평범한 그리고 지극히 여유로운 비전 속에서 아이들은 창조적인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표지 그림은 Ferdinand Hodler 작 Auszug der Jenenser Studenten in den Freiheitskrieg 1813,
Jenens students leave for the war of liberation(자유를 위한 전쟁에 나서는 예나 대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