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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13. 2024

‘학교’, 그리고 나

‘학교’, 그리고 나


어제 우리 ‘학교’는 2024년 하반기부터 2025년 상반기를 이끌어 갈 학생회 간부를 선출했다. 며칠 전부터 유세를 하는 그들을 보며 미세하게나마 ‘학교’ 조직의 작동을 보았고, 좀 더 시선을 넓혀 ‘학교’ 조직의 추진 동력을 떠올렸으며 나아가 ‘학교’라는 구체적 실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먼저 ‘학교’라는 실체가 유지되는 동력은 외부의 의도적 설계와 그에 따른 동력 투입에 완전히 의존한다. 이를테면 ‘학교’를 존치하게 하는 법령과 그 법령의 하위에 있는 조례나 규칙, 그리고 역시 법령에 근거한 상급기관의 구체적 행정행위(인사발령 및 행정지원)를 토대로 하여 ‘학교’가 구성된다. 그 토대 위에 역시 법령으로 규정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교사와 학생에 의해 운용된다. ‘학교’의 핵심 구성요소는 당연히 학생과 교직원이다. 범위를 조금 넓히면 학부모, 지역사회로 확장되지만 ‘학교’의 실질적 운용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개인적으로 ‘학교’에 입학한 이후 학생으로 20년 이상을 살았고, 교사로 30년 이상을 살았으니 내 삶 전체가 ‘학교’에 있다. 그런데 퇴직을 앞둔 요즈음, 50년 이상을 ‘학교’라는 곳에 있었으면서 내가 정말 ‘학교’를 잘 알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정확하게는 나와 ‘학교’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학교’를 향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학교’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다. ‘학교’ 밖의 일반적 시선과 ‘학교 안에 있는 나의 시선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할 때면 자괴감조차 든다. 


이유는 있다. 내가 공부하고 또 직장으로 다닌 ‘학교’는 나의 의지와는 거의 무관한 공적 조직이며 그 조직의 작은 구성원으로서 내가 개입하거나 혹은 조정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교장이라는 직책으로 ‘학교’에 근무했으면서도 ‘학교’는 대부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나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일이 거의 없었다.


흔히 말하는 소프트웨어는 변화가 가능하지만 하드웨어, 이를테면 법령, 규칙, 조례에 묶여 있는 사항을 바꿀 수는 없었다. 국회가, 교육부장관이, 그리고 교육감이 가진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교장 4년 동안 그 법령, 규칙, 조례가 교육 현실과 불일치하거나 혹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저항했지만 수정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의 권한 밖이었으므로. 


그러니 평생을 다녀도 ‘학교’는 언제나 나의 삶과는 거의 괴리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교장 4년 동안 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학교’에 시행하고 이식하고 정착시켰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내가 떠나온 후 1년 동안 그런 시도의 그림자조차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소프트웨어가 가진 한계를 느낀다. 


해방 이후 수많은 ‘학교’ 개혁이나 혁신의 방향을 현재의 외부 동력에서 ‘학교’ 조직 내부의 동력으로 치환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면 아마 현재의 ‘학교’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났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여전히 ‘학교’의 변화는 법령 개폐의 권한을 가진 권력의 의도에 따라 조정되고 있으며 그 의도는 하향식 의사 전달 구조에 의해 ‘학교’의 핵심 구성원인 교직원과 학생을 구속하고 있다.


교실에서 수업 한 시간 해 보지도 않은 국회의원이 그리고 교육부 관료, 국책 연구 기관, 대학 교수, 심지어 교육 관련 기관의 연구원 등이 ‘학교’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오류의 문제에 앞서 매우 위험한 일이다.(온갖 정책이 이렇게 결정된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위험한 지침에 따라 교실 현장을 떠난 지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이상 된 도 교육청의 관료들에 의해 지역 사정에 맞게 재조립된 ‘학교’ 운용의 방향이 공문을 통해 구체적 지침으로 ‘학교’ 현장에 내려오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오도誤導할 가능성조차 있다.  


아직 우리의 법 체계는 그 어떤 상향식 제안도 법령에 상응하는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오로지 하향식으로 구조화된 체계 속에서 ‘학교’의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50년 이상을 ‘학교’에 있으면서도 심지어 교장 직책을 4년이나 수행했으면서도 ‘학교’와 나는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유지되었으며, 정년이 다 된 지금 더욱 생소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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