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악, 그리고 교육
1. 현상
1954년 John Ronald Reuel Tolkien이 발표한 소설 ‘반지의 제왕’은 기독교와 북구의 신화, 그리고 유럽 전래의 각종 신화를 잘 버무린 판타지 소설이다. 2001년에는 영화화될 만큼, 극단적인 선과 악이 충돌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그런데 현실에서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는 그 이야기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슷하게 펼쳐지고 있다.
절대 악의 근원인 반지를 없애기 위해 반지 파괴 원정대를 조직하고 마침내 악의 근원인 반지를 파괴하는 과정의 여러 장면들에서 우리는 Sauron이 가진 절대 악의 위력과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Sauron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Orc족속들이 생김새와는 달리 그저 허깨비들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절대 악의 본질이 허깨비와 다르지 않다는 Tolkien의 생각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Tolkien은 소설에서 Orc를 뒤틀린 외모와 악랄한 천성을 가진 무리로 묘사했는데, 영화화된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Orc들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 어떤 판단도 없이 오로지 영혼을 Sauron에게 저당 잡힌 허깨비 같은 존재들이 Orc들이다. 절대 악에 의해 평화를 위협당한 인간과 요정들이 힘을 합쳐 절대 악을 파괴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절대 악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를테면 ‘절대 악’이란 Sauron의 흑마법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늘 도사리고 있는 ‘무지’와 ‘편견’, 그리고 ‘맹목’과 ‘무질서’ 들의 총합이었던 것이다.
2024년 우리는 대한민국에 득시글거리는 Orc들을 보고 있다. ‘무지’와 ‘편견‘이 마침내 ‘맹목’이 된 무리들, 그리고 그 ‘맹목’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Sauron 같은 무리들, 또 법과 질서를 왜곡하고 오직 자신과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현상을 왜곡하는 무리들……. 그리고 그들이 조장해 낸 ‘무질서’에서 번지는 정신적 역병이 일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Orc들의 ‘맹목’과 ‘무질서’를 기초로 하여 유지되는 악의 소굴 Mordor처럼, 지금 대한민국 역시 비슷한 무리들에 의해 악의 화염이 이글거리는 곳이 되고 만 것이다.
2. 교육
이 땅이 악의 소굴 Mordor처럼 되어가는 상황에서 교육이라고 온전할 리 없다. 어쩌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우 지엽적이지만 만만하지 않은 예를 들어보자. 최근 공지된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는 2023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입학생 1만 3141명 가운데 서울 지역 고교 출신은 4202명으로, 전체 32.0%였다. 서울지역 전체 4년제 대학 입학생 중 서울 출신은 16.4%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32%의 수치는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학교별로는 서울대 입학생 3746명 중 서울 출신이 1361명으로 36.3%를 차지했고 연세대는 입학생 4358명 중에 31.6%인 1375명이, 고려대는 5037명 가운데 29.1%인 1466명이 서울 출신으로 나타났다. (‘2023년 신입생 기준, 대학 알리미’) 갈수록 구조화되고 있는 서울 집중 현상이 이제는 대학 입학까지 확장되어 ‘서울 공화국’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방 소도시 인문계 고등학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 지역 유명 대학에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해가 갈수록 서울 경기 지역과 벌어진 성적의 격차는 이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더 어렵고 힘든 것은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다. 취업은 대학 입학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더 어려워진다. 취업이 어려워지면 수많은 지방 대학 졸업자들은 공무원 시험으로 전향하여 다시 대책 없는 고난의 몇 년을 보내게 된다. 어쩌면 이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화염 속에 이글거리는 Mordor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부분 고등학교는 아직도 여전히 수능과 대입에 모든 것을 건다. 별 대안도 방향도 없이 그 일에 고등학교 3년을 쏟아붓게 만든다. 교묘한 위계적 교육정책 속에서 펼쳐지는 서울 중심의 세상을 동경하는 아이들은, 대책 없이 ‘in seoul’을 꿈꾼다. 말릴 수도 동시에 비난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3학년이 되고 수능이 끝나면 그때 비로소 현실을 파악한다. 그 와중에 무너지는 아이들의 좌절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절대 악은 언제라도 ‘무질서’를 조장하고 그 ‘무질서’에 기초하여 ‘편견’을 부추긴다. ‘편견’은 현실 판단력을 잃게 하고 마침내는 자신의 상황에만 집중하는 ‘맹목’이 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맹목’과 ‘편견’이 난무하는 악의 제국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만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