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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14. 2024

칸트의 인식론(1)

칸트의 인식론(1)


1.     현상(Das Phänomen), 그리고 직관(Intuition)


칸트에 의하면 직관이란 인식이 대상에 직접 관계하고 또 모든 사고가 그 수단으로써 구하고 있는 것이라 정의했다. 쉽게 풀이하자면 눈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대상으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생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대상은 곧 물자체(독: Ding an sich, 영: thing-in-itself, 즉 감각과는 독립적으로 파악되는 사물 또는 사건)이지만 사실 '물자체'는 대상이라는 속성 이전의 상태이므로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다. 


‘물자체’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통해 다양한 언어로 표시되었는데, 예를 들어 불교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써 ‘다르마 다투(dharma-dhatu)’, 즉 ‘법계’가 있고 서양철학에서는 Noumenon(누메논)의 개념과 비슷하다. 누메논은 2~3세기경 로마의 엠피리쿠스 (Sextus Empiricus, 2c 중반의 피론주의자-회의주의 학파)의 저작인 ‘Outlines of Pyrrhonism(피론주의의 개요)’에서 인용되었던 것으로, 직역하자면 '생각된 것', '생각하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 등은 Noumenon의 사용에 대하여 칸트가 누메논을 사물 자체와 그 외양을 포함하는 명칭으로 사용하였다고 비판했다.(의지와 표상으로써 세계,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1818. 의 부록에 해당하는 칸트 철학의 비판 Critique of the Kantian philosophy)


‘누메논’을 다시 한자로 번역하면 ‘예지체叡智體’로 번역되는데 ‘예지체’란 ‘현상체(Phänomenon)’와 상대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예지체’는 '본체'이고 그 반영反影이 ‘현상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서양 철학의 거대한 족쇄, 이원론의 시작인 플라톤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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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 의하면 대상에 의해서 촉발된(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표상능력이 곧 ‘감각’이라고 말한다. 이때 ‘직관’은 감각과 대상 사이의 ‘경험적 관계’이며 이렇게 유추된 ‘경험적 직관’에 의해서 파악된 ‘무규정적(아직은 판단되지 않은) 대상’이 곧 ‘현상’이라고 말한다.


현상 중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을 ‘질료’라 하고, 그 ‘질료’들이 일정한 관계에 의해서 정돈되도록 하는 원칙을 ‘현상의 형식’이라고 부른다. 


칸트에 의하면 이러한 원칙에 의해 정돈된 질료들은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현상의 형식들이 우리의 심성 속에 이미 선척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칸트는 현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물자체’의 속성이 투영된 현상의 형식이 우리의 감각적 작용(선천적 의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칸트 지음, 최재희 번역, 박영사. Ⅰ. 선험적 원리론, 3~6쪽 )   


2.     순수이성의 개념


순수 이성에서 생기는 개념들은 반성(경험의 결과)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추리(선험)에서 얻어진 것이다. ‘이성’이라는 이름 자체가 오로지 경험에 의해 제한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즉 이성의 개념이 이성에 의한 개념 파악(Begreifen, 영어 Understanding)을 위한 것임은, 오성의 개념이 지각의 이해(Verstehen, 역시 영어 Understanding)를 위한 것과 같다. 


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것을 칸트는 ‘표상’이라 불렀다. 즉 칸트의 ‘표상’은 무엇인가를 사고할 때, 사고에 포함되는 '판단'이나 '인식', 그리고 '개념'이나 '느낌' 등이 모두 '표상'이다. 독일어로 표상은 ‘Vorstellung’인데 ‘Vor’는 ‘앞’이라는 뜻이고, ‘stellung’은 ‘서 있다’라는 뜻으로써 나의 의식 작용 속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단어를 합쳐서 문자적으로는 ‘앞세움’이라는 의미이다. 조금 확장시켜 본다면 ‘나’라는 존재가 떠 올릴 수 있는 '판단'이나 '인식', 그리고 '개념'이나 '느낌'이 표상인 것이다. ‘Vorstellung’을 영어로 번역하면 ‘Representaion’이나 Presentaion으로 되는데 이것은 ‘나’와는 무관한 단지 외부의 세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확한 번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표상 일반을 분류하면 먼저 무의식적 표상과 의식적 표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는 무의식적 표상은 논외로 한다. 의식적 표상은 주관적 감각(지각)과 객관적 인식으로 분류되고 객관적 인식은 다시 직접적 직관과 간접적 개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의식적 표상에서 분화된 주관적 감각이나 객관적 인식에서 분화된 직접적 직관은 생물학적 개념이 농후하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간접적 개념은 다시 경험적 개념과 순수 개념으로 분화되고 순수 개념은 다시 순수 감성적 시공, 오성의 개념(범주), 이성의 개념(이념)으로 분류된다. 

(순수이성비판, 칸트 지음, 최재희 번역, 박영사. 250쪽, Ⅰ. 선험적 원리론: 선험적 변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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