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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16. 2024

칸트의 인식론(2)

칸트의 인식론(2)


1.     ‘로크’와 ‘흄’을 넘어


칸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 중 로크에 대한 칸트의 평은 사뭇 흥미롭다. 지각에서 출발하여 일반 개념에 도달하려는 인식의 활동을 매우 유익하다고 평가하면서 그 탐구의 길을 최초로 연 사람을 로크라고 말한다.


그리고 곧바로 선천적 순수 개념의 연역은 로크의 방식으로는 어렵다고 말한다. 즉 참된 연역은 로크의 길에서 찾아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 이유로 로크의 경험으로부터의 연역은 사실의 문제일 뿐으로서 연역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오성의 순수한 개념의 연역, 선험의 연역 일반의 원리, 119)


대상을 인식하게 하는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직관이요, 둘째는 개념이다. 직관은 오로지 대상을 오로지 현상으로서만 대하는 것이다. 개념은 직관에 의해 파악된 대상을 생각하는 것이다. 대상을 직관할 수 있는 조건은 객체(대상)의 형식상의 근거로서 선천적으로 우리의 심성 속에 있기 때문에 감성에 의한 형식적 조건과 일치한다. 즉 현상은 이 형식을 통해서만 일어난다. 여기에 경험이 개입한다. 대상은 선천적인 개념의 전제 없이 경험의 객체(보편타당한 객체성)가 될 수는 없다. 


칸트는 오성의 순수한 개념을 오로지 경험에서만 발견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로크의 판단을 비판한다. ‘로크’는 ‘인간지성론(1690)’『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장에서 “타고난 사색의 원리는 없다.”라고 규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로크는 2장에서 “타고난 실천적 원리도 없다.”라고 선험의 영역을 아예 부정했다. 하여 칸트에게 있어서 로크는 편협한 경험론자로만 비쳤을 것이다.


뒤이어 칸트는 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일단 흄이 경험의 모든 한계를 넘어서 있는 인식을 얻으려는 모험을 위해 개념의 기원을 선천적이라고 인정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칸트는 흄이 오성이 자신 중에서 결합되어 있지 않은 개념(우리가 흔히 인과율이라 부르는)을 대상에 겹쳐 있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흄’은 그의 책 『Philosophical Essays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제2부 Of the Origin of Ideas(생각의 기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생각은 마치 무한한 자유를 가진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는 엄격한 제약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감각과 경험이 제공한 것을 ‘혼합’하고 ‘재배열’하며 ‘강화’하거나 줄이는 능력이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아마도 칸트의 비판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즉 흄에게 있어 인식이란 경험 이상의 것이 아닌 반면 칸트에게 인식이란 경험 이전의 선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로크와 흄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었다.

(순수이성비판, 칸트 지음, 최재희 번역, 박영사. Ⅰ. 선험적 원리론: 선험적 감성론, 선험의 연역 일반의 원리, A 94)


2.     인식의 세 겹


인식이 비교되고 연결된 표상들의 총합이라고 가정한다면, 하나의 표상과 다른 표상이 고립되어 있을 때 인식은 발생할 수 없다. 즉 인식의 외부적 조건은 연장延長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내부적 조건은 수용성과 자발성인데, 수용성은 적극적으로 직관을 동원하여 대상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다. 자발성은 그러한 수용성을 일으키는 바탕으로써 자발성에는 세 겹의 기초가 있다고 칸트는 말한다. 첫 번째는 심성의 다양성으로 표현되는 각각의 지식들을 바탕으로 하는 직관이며, 두 번째는 직관에 의해 받아들여진 구체적 표상들의 재생이다. 마지막으로 재생된 표상들이 다시 한번 인식의 기초가 되는 개념이다. 


모든 인식은 개념이 필요하다. 특정 개념이란 우리가 외적 현상을 인식하는 일종의 규칙이다. 나아가 직관의 규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이 아무리 불완전하고 혹은 불분명하더라도 개념은 반드시 필요하다. 가령 물체라는 개념은 외재하는 어떤 것을 지각할 수 있는 연장延長의 표상을, 그와 동시에 변화될 수 없는 표상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의 바탕에는 늘 선험적인 조건이 있다. 즉 직관에 의해 파악된 다양성이 필연적으로 종합되는 바탕은 당연히 선험적 조건이 있고 그 위에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식은 직관과 개념이라는 구성요소를 필요로 하고, 인식작용의 측면에서 보면 종합과 통일이라는 작용이 필요하다. 종합은 감성에 속하는 구상력(감성과 대상을 구성하는 개념 작용의 능력을 매개로 하여 인식을 성립시키는 능력)이 수행하고, 통일은 자기의식인 통각이 수행하는데, 이때 통일과 종합의 형식이 바로 오성에 속하는 범주이다.


따라서 인식은 범주라는 형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범주(지성의 순수 개념)란 대상 일반의 개념으로서, 이 개념(즉 범주)을 통한 대상에 대한 직관은 다양한 판단의 논리적 기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대상에 대한 개념 중, 스스로 경험될 수 없고, 동시에 경험할 수도 없는 것이 특정한 대상과 연결된다는 것은, 거의 모순에 가깝다. 그러한 개념은 직관이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내용도 가질 수 없다. 


(순수이성비판, 칸트 지음, 최재희 번역, 박영사. Ⅰ. 선험적 원리론: 선험적 감성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천적 근거 A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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