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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18. 2024

이질성과 동질성 그 미묘함 사이.

조은주의 잎의 비상

이질성과 동질성 그 미묘함 사이.


의욕의 주체는 언제나 *익시온의 회전하는 수레바퀴 위에 실려있는 것과 같으며 *다나이스 자매가 밑 빠진 독에 끝없이 물을 퍼 넣는 것과 같으며 영원히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탄탈로스와 같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동서문화사 2020. 254쪽


회화적 공간의 비현실성이 관람자에게 주는 자극은, 관람자 각자의 선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관람자 입장에서는 보이는 것만 보고 좀 더 나아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되는 것이다. 회화 공간에서 사물 만을 묘사하는 것은 풍경의 묘사보다도 더 극단적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노력 혹은 의도이겠지만, 관람자 쪽에서 발견하려는 것은 오히려 묘사된 사물이 가지는 인과관계일지도 모른다. 객관성과 인과관계는 일견 논리적이기는 하다. 작가 입장에서 객관성 추구의 결과로 사물을 선택하였다면, 그 사물이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히 가지고 있을 테지만 관람자로서 나는 화면에 나타난 사물의 인과 관계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화면을 지배하는 색은 초록색이다. ‘괴테’의 색채론(Zur Farbenlehre, 1810)에 의하면 초록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과 심신이 안정감을 느끼므로 “항상 생활하는 방의 벽지를 위해서 대체로 초록색이 선택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색채론』 괴테 지음, 권오상 옮김, 2016. 257 쪽) 즉, 매우 안정적인 색이다. 자연의 색이 초록인 것도 당연한 이치다. 그 초록의 잎을 선택한 작가는 잎을 또 다른 이미지와 조합한다. 동물의 털(아마도 새의 깃털, 완전히 관람자인 나의 관점이다.)과 조합한다. 매우 이질적인 두 개의 이미지가 작가에 의해 조합되어 우리에게 낯선 세계를 제공하지만 관람자인 나에게 많이 어색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작가의 방법에 슬며시 동의하면서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이미 작가는 이전의 몇몇 작품에서 보여 주었듯이 동물의 털(깃털)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가 묘사한 동물의 털이 주는 느낌은 부드럽고 포근하다. 녹색의 잎에 촘촘하게 묘사된 동물의 털은 이질적 객체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20세기 초의 표현주의나, 나아가 엥포르멜의 느낌이 나지만 사실은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부분이 많다. 위 두 사조는 사실 부정적 측면이 강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 작품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뭇잎이라는 소재는 우리 주위에 매우 흔하다. 하지만 작가가 묘사한 이런 형태의 잎은 목본류보다 초본류의 잎에 더 많이 나타난다. 다시 말하자면 큰 나무의 잎보다는 주변의 작은 덩굴이나 낮은 키의 꽃나무의 잎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의 잎이다. 하지만 그 역시 정확하지는 않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잎이라고 해 두자. 나뭇잎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의 상상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의 객관적 실체다.


잎맥까지는 잎의 속성을 나타내지만 말단에는 미세한 솜털이 돋아나고 있다. 사실 작가의 상상력은 무제한의 범위겠지만 작품의 구성을 통해 그 상상력을 관람자에게 설득할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설득과 무관한 예술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비로운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부드러운 털이 있는 잎은 설득과 신비함, 그 미세한 공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잎의 크기를 조절하여 묘사한 것은 어쩌면 작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사물이 가진 독특한 리듬감이다. 거의 본능적으로 묘사되었을 다양한 크기의 객체들은 ‘고흐’의 The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 1889)에 나타난 별 빛을 표현한 ‘동심원’과 프랑스 화가 ‘카유보트’의 L'Yerres, effet de pluie(예르에서 빗방울의 영향, 1875)에서 빗방울이 떨어진 동심원처럼 정적인 화면에 리듬과 반복을 제공하여 관람자에게 생동감을 준다. 이 작품에서 앞 선 두 작품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리듬감을 준다. 작가는 객체의 크기를 통해, 그리고 동일한 객체를 통해 리듬과 반복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소리를 크게 하거나 비트를 강하게 하거나 화음을 넣거나 아니면 당김음을 넣어 화면을 채운 생소한 객체 사이에 관계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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